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건으로 손꼽히지만,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광주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켜낸 역사의 현장”이라며 “우리는 모두 오월의 정신으로 위협과 도전에 직면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실천하며 창의와 혁신의 정신으로 산업 고도화와 경제 번영을 이뤄내야 한다”라고 밝혔다.
앞서 광주·전남 지역 117개 시민단체는 현 정부가 민주주의를 역행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의 광주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논할 때 5·18민주화운동은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시민들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집권에 반대하고 민주정치 지도자 석방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는데, 계엄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1995년 정부와 검찰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는 193명, 부상자는 852명이었다. 사망자 중 민간인은 166명, 군인은 23명, 경찰은 4명이었다.
하지만 당시 누가, 구체적으로 어떤 잔혹 행위를 벌였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은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 요구는 40여 년째 이어지고 있고, 관련 조사가 계속 진행 중이다.
과연 올해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까?
‘5·18정신’ 헌법에 수록될까?
최근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5·18정신을 헌법에 수록하자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전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고 민주당의 공약이기도 했던 5·18민주화운동의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이제 지킬 때가 됐다”며 다른 헌법 조항은 건드리지 않고 해당 부분만을 반영한 원포인트 개헌을 요구했다.
5·18정신을 헌법에 수록한다는 것은 이를 3·1운동, 4·19혁명과 더불어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실제로 5·18정신 헌법 수록은 윤 대통령과 여당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2021년 11월 광주를 방문해 “(5·18정신은) 우리 헌법 가치를 지키는 정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헌법이 개정될 때 헌법 전문에 반드시 올라가야 된다고 늘 전부터 주장해왔다”고 밝혔다.
이번 기념식에서도 윤 대통령이 개헌을 언급할지 이목이 쏠렸으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오월의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이고,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헌법 개정은 국회의원 200명 이상과 국민투표 과반 이상 찬성하는 등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와 방법을 두고 정치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5·18기념재단이 발표한 ‘2023년 일반국민 5·18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5·18정신의 헌법 수록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70.8%가 ‘매우 필요하다'(44.1%) 또는 ‘필요하다'(26.7%)고 응답했다.
해당 설문조사는 여론조사기관 서던포스트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전두환 손자, 가족 중 처음으로 5·18 공식행사 참석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인 우원 씨도 전씨 일가 중 처음으로 5·18민주화운동 피해자 및 유가족에게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사과하고 가족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우원 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가족이 추징을 피하기 위해 비자금을 만들어 썼다고 폭로했다. 이후 광주에 방문해 5·18 피해자 및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묘역을 참배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인 우원 씨는 지난 17일에도 전두환 일가 중 처음으로 5·18 공식행사에 참석했다.
우원 씨는 전날 광주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해 “제 가족을 대신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있길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를 다같이 기억할 수 있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우원 씨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를 계기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양심 고백과 진상규명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전두환 씨는 끝내 직접적인 책임 인정이나 사과 없이, 추징금 2205억 원 중 922억 원을 미납한 채 2021년 11월 사망했다.
이는 1997년 대법원이 내란·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전두환 씨에게 무기징역과 함께 선고한 추징금이다.
전두환 씨는 끝까지 자신이 5·18 유혈 진압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 16일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대국민보고회를 열고 지난 3년간 군 관계자 등으로부터 증언을 수집한 결과 당시 계엄군이 20여 곳에서 50회 이상 발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에 대한 상부의 지시가 있었고 그 책임자로 전 씨를 지목하는 진술이 있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연말까지 추가 조사를 거쳐 조사한 내용을 이듬해 6월 공식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의 역사
- 1985년 6월, 5·18 진상규명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커지자 국가안전기획부 주도로 범정부 ‘광주사태진상규명위원회’와 ‘실무위원회(80위원회)’가 구성됐으나 오히려 관련 기록 은폐 및 왜곡에 동원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1988년 야당 주도로 국회법을 개정,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 1990년 ‘광주민주화운동피해자보상법’이 제정돼 국가에 의한 피해자 보상이 시작됐다
- 1994년 3월 ‘5·18 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정신계승 국민위원회’가 결성돼 같은 해 7월 전두환, 노태우 등 35명을 서울지방검찰청에 고소 및 고발했다
- 1995년 10월, 검찰이 전 씨와 노 씨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자 이에 반발해 ‘5·18 학살자처벌 특별법제정 범국민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 1995년 12월 ‘5·18특별법과 공소시효 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이듬해 1월 전씨 등 5·18 핵심 관련자 8명이 기소됐다
- 1997년 4월, 전 씨와 노 씨는 내란·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각각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 1997년 12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으로 전 씨와 노 씨 모두 2년여 만에 석방됐다
- 2017년 8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한 헬기 사격 및 전투기 출격 대기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목적으로 ‘5.18 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및 전투기 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됐다
- 2018년 3월, 5·18 관련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 규명을 위해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 2019년 12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이듬해 5월 조사에 착수했다
- 2023년 12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조사 종료 후 이듬해 6월 종합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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