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남부 오키나와현의 나하 공항 주변 공군기지에서 F-15 전투기 등이 굉음을 내며 날아오른다. 같은 활주로를 공유하는 민간 비행기들의 소리가 작게 느껴질 정도다.
날이 밝고 훈련이 시작되며 전투기 3대가 차례로 이륙했다. 이들은 공중 전투 및 항공기 요격 등의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인다.
이곳 관계자들에 따르면 전투기 적어도 2대가 중국 소속으로 의심되는 항공기를 요격하고자 긴급 호출에 나섰다고 한다.
한편 다나카 마사토시 공군 중령은 이러한 일상적인 훈련도 이젠 새롭게 긴장된다며 말을 꺼냈다.
“우리는 매우 긴장 상태”라는 다나카 중령은 “하루하루 일본 영공 침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중국의 활동이 더욱 빈번해지고 수위도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무인기, 폭격기, 정찰기 등을 동원하고 있죠. 게다가 이 주변 지역을 떠다니는 항공모함도 많습니다.
나하시는 대만섬과 가까운 오키나와현에 속해있는 곳으로, 중국과 대만 간 분쟁 시 최전선에 서 있게 되는 곳이다.
앞서 중국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로 필요시 무력까지 동원할 수 있다고 공언한 바 있으며,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대만섬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발화점 중 하나가 됐다.

이렇듯 중국이 점점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오는 19일부터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일본 내에선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중국 관련 사안이 의제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역 안정 구축과 관련한 일본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 소속 이와마 요코 국제관계학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및 점점 더 불안정해져 가는 인도-태평양 상황이 일본을 “권력 구조의 중요한 위치”로 몰아넣었다고 표현했다.
이와마 교수는 “일본은 이 지역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과 그 파트너십 네트워크의 중추이며, 미국 또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또한 일본의 중추적 역할을 확실히 하고자 움직이는 모습이다. 지난 3월 일본은 지난 수년간의 침묵을 깨고 한국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며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같은 달 기시다 총리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만났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해 3000만달러(약 400억원)의 비살상 군사 장비 지원도 약속했다.
한편 기시다 총리의 지휘하에 일본은 2027년까지 방위비 관련 예산을 2배 증액하겠다며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 군사력 증강을 예고했다. 이렇게 될 경우 일본의 국방비 규모는 세계 3위로 올라서게 된다.
이는 일본이 자국 방어의 필요성을 얼마나 긴박하게 느끼고 있는지, 또 필요시 일본이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을 도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모든 방위 시나리오엔 미국이 빠지지 않는다. 현재 미군이 집중적으로 주둔 중인 오키나와를 포함해 일본엔 미군이 상주하고 있으나, 일본 또한 스스로 싸울 수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일본은 이를 통해 이 지역의 분쟁을 막고 중국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나 일본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 수 있을 만큼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4월 중국군이 3일간 이어진 군사훈련에서 대만섬 “봉쇄” 연습을 실시하는 동안 일본 방위성은 중국 항공모함 1척이 오키나와현 미야코섬에서 남쪽으로 불과 230여km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분노한 중국이 대만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도, 이중 최소 5발이 일본 최서단 요나구니섬에서 불과 100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떨어졌다.
한편 나카야마 요시타카 이시가키섬 시장은 “지리적으로 이시가키섬은 대만과 동남아시아 지역과 매우 가깝다. 그래서 위기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나하 공군기지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거리에 떨어진 이시가키섬은 주민들이 어업과 농업으로 살아가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하얀 모래밭과 수정처럼 푸른 바닷물로 관광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이시가키섬은 일본 자위대의 최신 군사 기지가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주변 들판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부들 옆으로 군인들이 기지 문을 지키고 있으며, 크레인과 불도저가 흙을 옮기며 마무리 공사에 한창이다.
군사 기지에 대해 나카야마 시장은 자신들의 섬을 지키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중국 선박들이 매우 가까이서 순찰하곤 합니다. 미사일 발사대 등 우리가 지닌 장비는 우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죠. 우리를 공격하려는 배나 선박에 맞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올해 초 약 600명에 달하는 병력과 함께 지대함과 지대공 미사일 등이 이곳 기지로 이동했다. 동중국해는 물론 더 멀리까지도 사정거리에 들어온다.
이렇듯 이시가키섬과 인접 섬들은 역내 유력 분쟁지역 2곳과 매우 가깝다. 하나는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나 중국 또한 영유권을 지배하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이며, 다른 하나는 200km 정도 떨어진 대만섬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전해지며 이 지역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저 멀리 유럽에서도 전쟁이 일어났다면, 이곳에서도 중국이 침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마 교수 또한 몇 가지 유사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의 지도자 유형”이라는 이와마 교수는 “또한 타자가 점령하고 있는 땅이라는 유사점”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유사점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이)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다며 두려워하는 거죠.”
그러면서 이와마 교수 우크라이나가 폭격당하는 모습은 일본인들에게 2차 세계 대전의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공감이 간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이시가키 사람들 또한 자신들의 고향 섬이 다시 한번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까 우려하며 분노하고 있다. 오키나와현은 미군과 일본의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그로부터 거의 80년이 지난 현재 다시 군사 기지가 들어서며 한때 똘똘 뭉쳐있던 섬 공동체는 분열됐으며 두려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2차 세계대전으로 가족을 4명이나 잃었다는 야마자토 세츠코(85)는 이시가키섬에 군사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는 소식에 “할머니 모임”을 만들어 이에 맞서고 있다.
야마자토는 “내 머릿속엔 ‘다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며 말을 꺼냈다.

현재 야마자토는 다른 노인들과 함께 매주 기지 밖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 손에 지팡이를 든 이들은 다른 한 손에 “우리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미래를”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야마자토는 기침이 나오는 탓에 중간중간 쉴 수밖에 없지만 열심히 구호를 외친다.
“자위대가 이시가키섬으로 오고 있다. 저들이 이곳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야마자토는 “우리 섬은 군대가 아닌 미륵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외쳤다.
청년 시절 전쟁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노년에 또 다른 전쟁을 겪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소망이다.
야마자토 “우리 섬이 전쟁터가 되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이 섬의 자연과 문화의 손에 자랐죠. 전쟁으로 이 모든 게 파괴되거나 없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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