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당국이 본격적으로 국경 봉쇄 해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여러 관측들이 제기되면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 넘게 굳게 닫혀있던 북중 국경이 과연 다시 열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런 가운데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BBC에 “현재 사사여행자, 즉 북한 당국의 허락을 받아 중국을 방문하려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권 신청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통상 여권 발급에 20일, 단기 사상교육에 열흘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할 때 대략 한달 정도 후에는 굳게 닫혔던 국경이 해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국경이 곧 열린다는 소문이 돌면서 북한 주민은 물론 국경 너머 인근 중국인들도 들떠있다는 얘기를 다수의 북한 주민들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들은 ‘국가비상방역사령부까지 만들어가며 장군님께서 위기를 탈출했다고 밝혔는데, 이제 우리 살림도 좀 나아져야 되지 않나’ 이렇게들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 역시 머릿속으로 이런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북중 국경이 열릴 수 있다는 전망은 지난 13일 교도통신 등 일본 매체들을 통해 처음 제기됐다. 북한이 오는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200명 규모의 선수단을 보낼 예정이며, 여성응원단을 파견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한 것.
북한은 실제 지난달 26일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사전회의에 2명의 대표를 보내 참가 의사를 밝혔다. 북한은 축구와 수영, 용선(드래곤보트) 등의 종목에 참가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홍콩 사우스차이나포스트 역시 북한이 다음달 10일 국경을 개방할 것으로 보인다며, 접경 지역인 중국 랴오닝성의 여행사들이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허용할 것이라는 북한 당국을 통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북한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2020년 초부터 국경 이동을 엄격히 제한해왔다.
식량난 해결될 수 있을까
국경 봉쇄 해제는 단순히 북한과 중국을 다시 오갈 수 있게 되는 차원을 넘어선다.
북한 내 시장(장마당)은 사실상 밀수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급이 끊긴 상황에서 국경에 빗장이 굳게 걸리면서 가장 큰 피해는 역시나 북한 주민 몫이다.
실제 이달 초 소형 어선을 타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한국으로 망명한 북한 일가족 역시 코로나 이후 가중된 경제난과 식량난 때문에 탈북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가족이 어선을 타고 NLL을 넘어 망명한 것은 지난 2017년 7월 이후 6년여 만이다.
한국 통일부는 지난 3월 “북한 지역 일부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식량난이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공개한 ‘1분기 작황 전망과 식량 상황 보고서’에서 북한을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나라로 재지정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도 북한 전체 인구의 42% 가량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며 식량 및 의료 서비스 접근성 문제를 북한 인권의 ‘최우선 관심사’로 지목했다. 또한 2021년 말 기준 북한 인구의 60%가 식량 부족에 따른 불안에 시달리는 것으로 추산했다.
앞서 미 농무부는 지난해 9월 국제식량안보 평가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식량 부족량을 120만톤 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는 미화 4억1700만달러 어치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 간 중국에서 쌀 6723만 달러어치를 수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8년 한 해 쌀 수입액 2260만 달러보다 3배 가량 많은 규모다.
이와 관련해 권태진 GS&J 인스티튜드 북한·동북아 연구원장은 “북한이 최근 7개월 간 중국에서 쌀 17만 톤 이상을 수입했음에도 여전히 식량이 부족한 이유는 국경 폐쇄로 비공식 무역이 완전히 차단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당국을 비롯해 민간, 군부, 정부 대리인 등 시장에 식량을 공급하는 주체가 다양했고 이들이 중국에서 대량으로 식량을 수입했지만 국경 폐쇄 이후 밀수가 완전히 끊기면서 공식 무역에만 의존하다 보니 과거 코로나 사태 이전처럼 충분하게 식량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과거엔 비공식 수입량이 공식 수입량보다 더 많았을 정도”라며 “정확한 수치를 내긴 어렵지만, 두만강 쪽을 통해 해산으로 들어오는 식량과 서해안 쪽 단둥으로 들어오는 양을 합하면 적어도 30만 톤에서 50만톤 정도 됐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또 “식량 유통 자체가 과거처럼 원활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공급량 자체도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앞서 중국 쌀을 대거 수입하면서 북한 내 식량 가격이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최근 영농철을 맞아 수요가 급증해 다시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부연했다.
권 원장은 이어 “국경이 다시 열린다면 당연히 식량난은 일정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며 “개인 연곡상이 식량을 밀수 및 유통시킬 수 있도록 북한 당국이 어느 정도 눈을 감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중 간 육로가 개방된다면 비공식 교역이 재개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정일 생일 맞춰 개방하려 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지난 2월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에 맞춰 중국에 나가있던 북한 근로자들을 데려오겠다고 밝혔지만 사정상 지연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코로나 이전에 중국으로 간 후 6년 가까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근로자들을 우선적으로 들여보내려 했었다는 얘기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3~6년 정도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북한 근로자들이 거의 폭발 직전의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나간지 오래된 근로자들부터 먼저 데려오겠다고 밝혔지만, 방역상의 이유로 아직도 국경문을 열지 못하고 이제서야 서서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 실장은 “북한이 계속 국경을 닫고 있기는 힘들 것”이라며 “정확한 시기를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북한이 오는 7월 27일 전승절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고 9월 9일 정권수립일 기념일에도 대규모 행사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 시기에 맞춰 국경 봉쇄를 해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2년 전 내정됐던 왕야쥔 주북 중국대사가 지난 3월 북한에 들어간 것을 보면 지금 매우 선별적으로 중국에서 북한으로 사람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전했다.
북한이 핵·미사일 전략도발 및 대남-대미 비난전을 강화하는 현 상황에서 코로나 방역 해제를 선택 혹은 국경을 당장 개방하기 보다는 더 여유를 두고 주민통제 조치를 계속하면서 내부적으로 결속을 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 국가정보원 대북분석관을 지낸 곽길섭 국민대 겸임교수는 “당장 섣불리 주민들의 왕애를 허용하기 보다는 차츰 국경을 통한 화물 교역, 물자 이동을 늘려가면서 추이를 볼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실질적으로 백신에 의한 면역 체계 완성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당장 코로나 방역 완료를 선언하기는 조심스러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경우 통제가 가능하고 철저하게 정해진 인원에 대해선 필요한 검역 조치가 충분히 가능하다”며 “오는 6월 25일부터 7월 27일까지 반미 투쟁기간이 시작되는 만큼 북한 입장에선 국경을 개방해 주민들의 대외 교류를 활성화 시키기 보단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일단 상반기가 지난 이후에 정치·외교적 사안과 코로나 방역 상황 이 두 가지를 같이 고려해 국경 개방 문제가 진행될 것”이라고 곽 교수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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