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현지시간) 열린 대선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오는 28일 대선 결선 투표가 열릴 예정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과 케말 클르츠다로울루 야권 공동 후보의 맞대결로 좁혀진 가운데, 지난 20년간 권력을 잡았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튀르키예의 외교 정책은 큰 변화를 맞이할 수도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이후 튀르키예는 러시아와 더욱 가까워지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서방 동맹국의 반감을 샀을 뿐만 아니라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분쟁 등에도 직접 군을 투입한 바 있다.
반면 클르츠다로울루 후보는 비교적 친서방적인 인물로, 국외 문제 개입을 줄이겠다고 약속한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튀르키예의 여러 외교 노선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살펴봤다.
시리아 난민 관련 정책은?
우선 내전을 피해 튀르키예로 넘어온 시리아 난민만 해도 공식적으로 약 370만 명에 이르며, 아프가니스탄 등 다른 국가에서 넘어온 난민들도 있다.
이에 대해 튀르키예는 이 정도 규모의 난민을 “다룰 수 없다”는 게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장이다.
주목할 점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클르츠다로울루 후보 모두 난민들의 송환을 위해 시리아와의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돌려보내진 시리아 난민들이 바샤르 알 아사드 현 시리아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권 아래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달 터키 언론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모든 난민을 본국으로 송환할 것”이라는 클르츠다로울루 후보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실제로 클르츠다로울루 후보는 유럽연합(EU)과 체결한 난민송환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해당 협정을 통해 튀르키예는 시리아 난민 수백만 명을 받아들였으며, 유럽 국가들은 난민의 유럽행을 막을 수 있었다.
EU 측이 협정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게 클르츠다로울루 후보의 주장이다.
서방과의 관계는?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설립된 이래로, 튀르키예는 전통적으로 서구 열강과 동맹 관계를 맺어 왔다.
튀르키예의 군대는 서방의 군사 동맹인 NATO 회원국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할 뿐만 아니라, 튀르키예 정부는 EU 가입도 신청한 상태다.
그러나 에르도안 현 대통령은 종종 서방 국가를 향해 “제국주의자” 혹은 “불공정하다”며 날을 세우곤 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집권 이후 줄곧 러시아와 친밀한 관계를 구축해왔다.
지난 2019년에는 러시아제 방공 미사일 시스템 ‘S-400’을 수입하며 미국의 반감을 ‘F-35’ 전투기 개발 공동 국제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하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핀란드와 스웨덴이 NATO 가입을 신청했으나, 튀르키예는 스웨덴이 튀르키예의 적들을 숨겨주고 있다며, 가입 신청을 가로막고 있다.

한편 영국의 외교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갈립 딜레이는 클르츠다로울루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서방 국가와의 관계 회복에 집중하리라 전망했다.
“클르츠다로울루 후보는 서방과 더 공식적인 관계를 구축해나갈 것입니다. 국제적인 사안에 대한 튀르키예의 태도는 에르도안 대통령 시절에 비해 개인적인 성격보단 더욱더 외교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클르츠다로울루 후보는 당선된다면 튀르키예의 EU 가입 신청을 다시 시작할 것이며,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판결 또한 준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시리아 난민 수백만 명을 수용한다는 EU와의 거래에서 손을 떼겠다고 위협하기도 하는 등 서방 강대국들과 관계를 강화하면서도 기꺼이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인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정책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한 이후 튀르키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 중이다.
서방 세계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서도 우크라이나에 군용 드론(무인기) ‘바이락타르 TB2’를 수출하는 식이다.
또한 러시아가 흑해 해상운송을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선박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흑해 곡물 이니셔티브’ 체결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영국 엑시터 대학에서 아랍 및 이슬람 국가에 대해 연구하는 함둘라 베이카는 이런 상황에서 클르츠다로울루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튀르키예와 러시아의 거리는 멀어지리라 전망했다.
베이카 연구원은 “(에르도안 현 대통령과 달리) 클르츠다로울루 후보는 러시아와 그리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러시아와 척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동국가와의 관계는?
리비아에서 튀르키예군은 시리아 동부를 중심으로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이 이끄는 반군에 맞서 수도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민협의정부(GNA)’를 지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런던 시티 대학 소속 베굼 졸루 박사는 “튀르키예 입장에서 리비아 사태는 자국의 오랜 사업적 이해관계가 걸린 일”이라면서 “(따라서) 튀르키예는 리비아의 안정을 바란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라크에선 어떨까. 튀르키예군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쿠르드스탄 노동자당(PKK)’과 ‘시리아수호부대(YPG)’에도 맞서고 있다. YPG가 PKK를 지원하고 있다는 게 튀르키예 정부의 주장이다.
PKK는 튀르키예는 물론 다른 여러 국가에서 테러 단체로 간주하는 무장 조직이다.
그러나 이는 YPG를 시리아 내 핵심 동맹 세력으로 간주하며, 알 아사드 현 대통령 정권에 반대하는 미국의 심기를 건드는 행동이다.
한편 클르츠다로울루 후보는 이러한 문제에 “불간섭주의” 외교 정책을 채택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실제로 당선된 이후에도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에서 튀르키예군 철수를 명령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졸루 박사는 “클르츠다로울루 후보가 속한 야당 연합에는 이러한 철군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자들도 대거 포진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과의 관계는?
튀르키예와 중국의 관계는 무역과 금융을 중심으로 살펴봐야 한다.
튀르키예는 무역 능력 강화를 위해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가입했으며, 중국으로부터 대출도 받았다.

또한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국은 튀르키예에 처음으로 백신을 제공한 국가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에르도안 행정부는 중국의 심기를 건들지 않고자 노력 중이다. 이에 따라 같은 튀르크계인 위구르족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 의혹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반면 클르츠다로울루 후보는 대통령으로서 위구르족 탄압 문제와 관련해 중국 정부에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이카 연구원은 “클르츠다로울루 후보가 지금은 위구르족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막상 권력을 잡은 뒤엔 조용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에서 진행 중인 ‘소프트 파워’ 정책의 향방은?

지난 20여 년간 튀르키예 정부는 아프리카 수십 개국에 새롭게 대사관을 건립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학교를 세우고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에게 튀르키예 유학 비용을 지원하는 등 소프트 파워(문화적 영향력) 중심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몇몇 아프리카 국가엔 드론 등 군사용 방어 장비를 수출하기도 했다.
이렇듯 에르도안 행정부가 아프리카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졸루 박사는 국제사회에서 빈국의 수호자로서의 튀르키예 지위를 높이려는 노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서방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국가들을 연합하고자 노력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졸루 박사는 대통령이 바뀌더라도 튀르키예의 이러한 아프리카 정책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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