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청년 막심은 20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싸우다 결국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군 저격수가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막심의 어머니 릴리야는 “아들은 8일간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면서 “심지어 저격수의 총알이 언제 날아들지 몰랐기에 단 5분이라도 잠시 눈을 붙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릴리야에게 바흐무트는 “지옥”이다. 이곳에서 아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릴리야는 아들 막심이 동생 이반을 살리다 죽었다는 사실에 작게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지난해 막심과 이반 형제는 러시아의 침략이 본격화하자 군에 자원했다. 막심 나이 22살, 이반은 겨우 18살이었다.
아직도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반은 막심과는 뗄 수 없는 끈끈한 관계였다고 말했다.
“형은 언제나 제 곁에, 저는 언제나 형 곁에 있었어요. 제게 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반은 형과 전쟁 중 함께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여줬다. 참호, 군용 차량 등에서 휴식을 취하며 찍은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 잘생긴 두 청년의 얼굴에선 순수함이 사라지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은 마지막 순간 바흐무트에 있었다. 그곳에선 집집이 돌아다니며 잔혹한 교전이 벌어졌다. 이반은 “바흐무트에선 도저히 잘 수 없었다. 24시간 내내 공격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이들 형제가 속한 부대는 창문이 없는 건물에 갇혔다. 사격을 위해 벽을 뚫고 있는데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반은 부상당하던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총을 재장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벽 뒤에서 섬광이 터졌고 그 즉시 몸이 마비되는 느낌과 함께 땅으로 쓰러졌습니다.”
이반은 몸과 얼굴에 흐르는 피의 온기를 느꼈다.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저는 제가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피를 흘리다 죽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형 막심은 동생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막심은 이반을 다시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이반은 “형이 날 다시 살려놨다. 내 부러진 치아를 꺼내고 응급처치를 해줬다”고 말했다. 또한 막심은 이반이 질식사하는 것을 막고자 목에 구멍도 뚫었다.
이반은 폭발 직후 형이 섬세하게 피를 닦아내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여줬다.
아울러 이반이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채 걸어가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은 또 다른 영상은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영상 속 이반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우크라이나 국기를 움켜쥐고 있다. 이 영상은 바흐무트 전투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지닌 용기와 저항의 상징이 됐다.
이반은 막심이 없었다면 자신은 죽었으리라면서 “형은 날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내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막심은 긴급하게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 형제에게 오고 있던 의료진이 탄 차가 러시아 대전차 미사일에 맞았고, 의료진은 전원 사망했다. 이후 이반은 9시간이 지나서야 구조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막심은 자기희생의 길을 택했다. 동생과 함께 안전하게 병원으로 옮겨가는 대신 부대를 이끌고자 바흐무트에 남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간 바흐무트에서 항전한 막심은 러시아 저격수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우크라이나에선 죽은 군인들을 기리는 장례식이 전선에서 들리는 포성처럼 익숙한 존재가 됐다.
그러나 막심의 장례식은 조금 더 특별했다. 슬픔에 빠진 가족들은 물론 토마키우카 주민 전체가 나와 청년의 죽음을 슬퍼했다.
장례 행렬이 묘지로 향하는 길에 시민들은 무릎을 꿇고 애도를 표했다. 꽃을 움켜쥐거나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기도와 추모곡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지난 1년간 이반 형제의 부모인 세르히와 릴리야는 두 아들의 전투를 간접적으로나마 함께 견뎠다. 이들 부부는 아들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제대로 자본 날이 없다. 언제나 아들들의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릴리야에 따르면 가끔씩 “엄마, 우린 잘 지내요”와 같은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안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가장 두려워했던 소식이 들려왔다.
릴리야는 크 아들 막심의 관이 마침내 땅 속에 내려지기 전 울리는 예포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 부부는 아직도 아들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릴리야는 장례식이 끝난 뒤” 내 영혼은 갈갈이 찢겼다”고 말했다. 이제 릴리야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는 남은 아들 이반이다.
릴리야는 막심이 이반과 함께 떠날 수 있었으나, 결코 비슷한 나이의 경험이 적은 부대원들을 버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막심은 영웅이고, 천사이고, 햇살입니다. 아들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동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측은 이번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망했는지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 묘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이번 전쟁의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이 작은 마을의 작은 묘지엔 새로 만들어져 꽃으로 장식된 묘지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막심의 장례식을 주관한 지역 신부 로만은 그 주에만 해도 군인 3명의 장례식을 치렀다고 말했다.
사제의 길로 들어서기 전 한때 군인이었던 로만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이다.
로만은 이반의 가족과도 알고 지내던 사이로, 친구처럼 지내던 이들 형제가 안전하게 돌아오길 이반의 부모님과 함께 기도했었다.
“종종 군인들을 매장한다”는 로만은 “하지만 친구를 매장하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이반은 여전히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반은 부상당했던 그 순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우크라이나 국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같은 부대원들과 막심의 서명이 담긴,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된 그 국기는 이반이 흘린 피로 얼룩져있었다.
BBC는 이반에게 입대를 후회하냐고 물었다.
이반은 “우리 형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는 건 영광이다. 그렇기에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형은 조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불행하게도 자유는 피로서 쟁취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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