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탑승객이 운항 중인 여객기의 비상구를 여는 위험천만한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향후 실질적인 재발 방지가 어떻게 이뤄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지난 26일 대구공항 인근 상공 213m를 비행하던 아시아나항공 OZ8124편의 비상문이 갑자기 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여객기의 비상구 좌석에 앉아있던 A씨(33)가 비상구 레버를 돌렸기 때문이다. 여객기는 문이 열린 채로 착륙했다.
당시 비행기에는 A씨를 포함해 194명의 승객과 2명의 조종사, 4명의 승무원이 탑승한 상태였다. 일부 승객들은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착륙 직후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아시아나항공은 사고가 발생한 기종인 에어버스 A321-200 비상구 옆좌석을 당분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번 조치에 대해 “사고가 났던 비행기의 해당 비상구 좌석에 대해서만 판매를 중단하는 것”이라며 “나머지 비상구 좌석에 대해선 판매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해당 좌석에 앉은 승객의 손이 안전벨트를 풀지 않고도 비상구 레버에 닿기 때문에 비상시 승무원의 통제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부 다른 항공사들도 이번 사고 여파로 비상구 좌석 판매 정책 변경이 필요한지 검토에 착수했다.
비상구 좌석이 뭐길래
비상구 좌석은 앞좌석이 없어 다른 자리보다 넓고, 다리도 뻗을 수 있어 ‘레그룸 좌석’으로 불린다. 또 비상시 승무원을 도와 비상구 문을 열고 다른 승객의 탈출을 도와야 하는 등 신속한 대피를 유도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항공사들은 비상구 좌석에 비교적 건장한 승객을 먼저 앉도록 한다.
이런 이유로 비상구 좌석 배정엔 일정한 제한이 따르기도 한다. 현행 아시아나 규정에 따르면 한국어나 영어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승객이나 활동성, 체력 또는 양팔이나 두 손 및 양다리의 민첩성이 아래의 동작을 수행하기에 충분치 않은 승객 등은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을 수 없다.
이번 사고를 야기한 A씨는 180㎝가 넘는 건장한 체격으로 외형적으로는 비상구 좌석 이용에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비상구 좌석에 앉을 수 있는 규정에서 건장한 신체에 초점을 맞췄을 뿐, 정신 건강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 항공사마다 규정은 다르지만 어린이나 장애인 등이 아니라면 추가 요금을 낸 뒤, 별도의 검증 없이 사실상 비상구 좌석을 구할 수 있다.
비상구 규정, 이대로 괜찮나
판매가 중단된 좌석은 174석으로 운용되는 A321-200 항공기(11대)의 ’26A 좌석’과 195석으로 운용되는 A321-200 항공기(3대)의 ’31A 좌석’이다.
31A 좌석은 기종 구조상 앉은 상태에서도 비상구 문이 손에 닿을 정도로 비상문에 붙어 있다. 특히 일반적으로 비상구 자리에는 위급 시 승객들의 비상탈출을 돕기 위해 승무원이 간이좌석을 펴고 승객과 마주 앉는 구조가 많다. 하지만 사고 기종의 해당 공간에는 승무원 자리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시아나항공의 홍보팀 백현우 대리는 BBC코리아와의 통화에서 “해당 기종은 사고를 낸 승객의 바로 앞에 승무원이 앉는 구조가 아닌, 대각선 맨 끝에 승무원이 앉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해야
아시아나항공이 사고 기종의 해당 비상구 자리 판매를 전면 중단했지만, 해당 좌석을 단순히 판매 제한하는 게 능사는 아닐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비상구 옆자리 승객은 비상시 승객 탈출을 도울 의무가 있기 때문에 비상구 좌석 규정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압이 낮아진 상태에선 비상구 옆에 앉은 승객이 언제든지 문을 쉽게 열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같은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비상구 좌석 승객에 한해 정신 건강 등을 면밀히 살펴본 뒤 해당 좌석을 배정하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승객의 정신 건강을 사전에 확인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비상구 승객의 건강을 사전에 확인할 필요성에 대해 “매우 좋은 의견이고 적극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현실적으로 규정을 어떻게 바꾸고 제반 사항 등의 법적 문제에 국토부나 유관기관과 함께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조성환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항공보안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최근 개인정보 보호가 민감한 문제로 다뤄지기 때문에, 비상구에 앉는 승객이 혹시라도 어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지 등의 기록을 사전에 확인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조 교수는 다만 기내 보안을 현재보다 더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에 비상문을 강제로 열었던 A씨의 경우, 실행을 착수하기 전까지, 예를 들면 비행기 탑승 전부터 정서 불안 등의 이상 징후가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운항이 종료될 때까지 승무원이 그 승객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등의 보안 활동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사례의 경우
해외에서도 종종 항공기 비상문 열림 사고가 발생하지만, 이는 통상 멈춰 있거나 지상에 있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 조작 실수 등으로 인해 지상에서 문이 열리거나 비상슬라이드가 펼쳐지는 일 등은 종종 있었다.
지난 2017년 인천공항발 베트남 다낭행 항공기에서 60대 승객이 레버를 당겨 비상구가 열리면서 탈출용 슬라이드가 펴진 바 있다. 지난 2019년 영국 맨체스터공항에서도 파키스탄항공기에서 비상구를 화장실로 착각해 개방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같은 해 6월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서도 20대 여성이 비상구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가 승무원과 승객들이 제지하는 사태도 있었다. 이 여성은 당시 2년 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대구공항 사례처럼 착륙 과정에서 비상구가 열리는 건 국내에서 전례가 없었다.
조성환 교수는 “국내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처럼 비행기 내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승무원들도 평소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대처할 수 있다는 자세로 훈련해야 하고, 그에 따른 보안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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