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중순, ‘하우스’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중국 스탠드업 코미디언 리 하오시는 입양한 개들에 대해 농담을 했다.
관객이 가득 찬 베이징의 공연장에 선 리 하오시는 지금 키우는 개들이 “승리를 위해 싸웠고 모범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군부대 연설에서 사용하는 문구다.
농담은 많은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지만, 한 청중은 나중에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 “인민군”을 모욕하는 발언이라 불편했다는 댓글을 남겼다.
중국 관영 언론과 관리들은 이 농담이 중국 군대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라며 즉각 비난을 퍼부었다. 리 하오시는 구금됐고, 소속사 ‘샤오궈’는 1500만위안(약 27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어야 했다. 샤오궈는 중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꼽힌다.
리 하오시 사건은 급성장하며 활기를 띠던 중국 스탠드업 코미디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시진핑 정권 하에서 검열이 더 심해지고 공개적 표현을 위한 공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는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젊은이들이 기쁨과 슬픔을 더 가볍게 관조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 작은 자유가 이제 위험에 처한 걸까?
BBC는 리 하오시의 구금이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코미디언 13명과 매니저 2명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아무도 인터뷰를 원하지 않았다.
서구에서 비교적 최근에 넘어온 스탠드업 코미디는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젊은층에서 인기 있는 오락 장르로 자리 잡았다.
전국 도시에서 ‘오픈 마이크’ 행사가 급증하면서 코미디언 지망생과 관객이 몰려들고 있다. 가장 저렴한 티켓은 5위안(약 920원) 미만이다.
‘중국공연예술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에만 약 18500회의 라이브 공연이 개최됐고 약 4억위안(약 734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중국 전역에 가혹한 봉쇄 조치가 시행됐기 때문에 공연 횟수는 2022년에야 증가했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30세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이리스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아픔을 못 느끼게 만드는) 마취제와 같다. 대체재가 없다”고 말한다.
스탠드업 코미디의 오랜 팬인 아이리스는 작년 상하이가 65일간 봉쇄된 동안 유일한 위안과 유대감을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느꼈다며, 본인의 생명줄이었다고 말한다. 상하이에서는 전면적이고 소모적인 봉쇄 조치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졌고 대중의 분노에 불이 붙었다. 당시 상황은 세계 각국에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아이리스는 “모두가 봉쇄 기간 동안 느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분명 훌륭한 소재가 되겠지만, 실제로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도 다들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담은 오갔다. 아이리스는 야채 “블라인드 박스”에 대한 미묘한 농담을 기억한다. 최근 중국에서 내용물을 모르고 구입하는 수집용 장난감 열풍이 불었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상하이 주민들이 장을 보기는커녕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이웃이 보내주는 야채로 연명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풍자로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스탠드업 코미디가 성공을 거두자, 리 하오시가 구금되기 훨씬 전부터 여러 곳에서 검열이 시작됐다.
코미디 쇼 대본을 쓰는 한 작가는 지금은 삭제된 웨이보 게시물에서 작년에 어떤 회사가 소재로 쓸 수 없는 주제들을 잔뜩 보내왔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고위 당 지도자, 당국 관계자, 혼외정사, 동성애, 도박, 빈곤, 전염병 등의 주제가 포함됐다.
그런 다음, 농담의 영향에 대해 논의하는 일련의 회의가 열렸다. 얼마나 민감한 주제였는지, 누구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지를 검토했다. 이후 관련 부서에 대본을 제출했지만 관계자들은 별다른 언급이 없었고 명확한 지시도 없었다.
이 코미디언은 “업계가 콘텐츠 제작에 80%의 에너지를 쏟는다면 검열 대응에는 500%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엄청난 자원 낭비인 동시에 젊음의 낭비 “라고 썼다.
하지만, 중국에서 말하듯 “검열을 피하며 민감한 논의를 이어가는” 코미디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코미디는 성 불평등, 청년 실업 등 중국의 여러 문제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코로나19 조치를 풍자하면서도 살아남았다. 코미디 속 유머는 종종 웨이보의 인기 주제가 되어 대화를 촉발했다.
여성 코미디언 양 리는 2020년 한 쇼에서 남성의 자신감에 대해 “평범해 보이는데 어떻게 저렇게 자신감이 넘칠 수 있지?”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평범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남성”이라는 ‘밈’으로 발전해 지금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결혼에 대한 사회적 압박과 같은 문화도 손쉬운 주제가 됐다. 쌍둥이 자매를 둔 코미디언 옌이 옌웨는 “우리 주변에 특히 짜증 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결혼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결혼을 강요한다. 결혼은 신비한 제도다. 일단 결혼을 하면, 다단계처럼 회원을 모집해야 한다”고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일부 주제는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다. 치 지는 지난 2월 시진핑 주석의 미국 순방 중에 시진핑이 내세우던 ‘제로 코로나’ 정책과 중국 공산당의 검열에 대해 언급했다. 이후 치 지의 소셜미디어 계정은 바로 삭제됐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중국 코미디언들을 신중하게 만드는 한편, 일각에서는 이러한 신중함이 유머 감각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25세 중국인 기술자 란D(가명)는 “이제 코미디언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만 말한다. 중국 정부나 당과 관련된 이슈는 감히 언급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올해 초, 란D는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귀향해 상하이에서 샤오궈의 라이브 공연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행사가 취소되어 실망에 빠졌다.
“그 공연들은 제게 정치적 ‘간식’과도 같아요. 간식은 끊기 힘들죠.”
란D가 사랑하는 공연들이 이 폭풍우를 이겨낼 수 있을까? 홍콩침례대학의 미디어·대중문화 학자 셩 저우 박사는 “찬물을 끼얹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업계 내에서 자체 검열을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아이리스와 같은 젊은 중국인들은 그보다 비관적이다. 아이리스는 가끔 중국 스탠드업 코미디의 미래가 없을 것 같아 낙심하지만, 부디 그 생각이 틀렸기만을 바란다. 아이리스는 “중국인들이 중국을 풍자하는 대화를 듣고 싶다”고 했지만, 업계가 살아남으려면 타협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우스[리]가 3시간 동안 인민 해방군을 조롱했다면 좀 더 납득이 됐겠지만, 그 몇마디가 전부였다니까요.”
아이리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리의 농담이 리는 물론이고 업계 전체에 문제를 일으킬 만한 내용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리스는 리의 농담에 사용된 군부대 슬로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공산당 당원인 친구가 말해준 뒤에야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지금 족쇄를 차고 춤을 추는 것과 다름없어요. 하지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기꺼이 발언하죠. 그 모습이 심금을 울립니다.”
추가 취재: BBC 중국어 서비스- 지지에 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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