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의 생물 다양성을 추적하기란 매우 어렵다. 국가별로 모니터링 프로그램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기준으로 수집된 데이터도 거의 없으며 공개적으로 공유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이 깊을 과학자들에게 놀라운 해결책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바로 대기 오염 수준을 모니터링하고자 이미 오랫동안 전 세계에서 두루 사용하고 있는 장치이다.
이러한 대기 오염 필터가 지난 수십 년간 의도치 않게 풍부한 동식물의 환경 DNA를 포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가 생물 다양성의 과거와 미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 최신 연구에 따르면 캐나다와 영국의 과학자들은 대기질 모니터링 장치들이 2021~2022년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동식물의 많은 유전자를 수집하게 됐음을 발견했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가 전 세계의 “생물 다양성을 추적하고 모니터링하기 위한 엄청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범 연구를 통해 2021년엔 9~10월, 2022년엔 4~5월까지 스코틀랜드 지역과 런던에 설치된 대기질 필터에서 180개 이상의 식물, 균류, 곤충, 포유류, 양서류 등의 환경 유전자를 채집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기 모니터링 인프라가 “국가적 규모의, 높은 수준의 생물 다양성 데이터를 수집할 엄청난 기회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이자 런던 퀸메리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는 조안 리틀페어 교수는 “장치 단 2개에서 180개 이상의 환경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식별할 수 있어 매우 놀라웠다”고 설명했다.
금눈쇠올빼미, 도롱뇽과 같은 동물계 생물과 80가지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식물 유전자 등, 대기질 장치에선 다양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해당 지역에선 특이한 종의 유전자나 개체군의 이동을 나타내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는 이렇게 수집된 유전자가 지역적이며 “다른 대륙에서 날아와 붙은 게 아니”라는 증거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필터에 묻은 환경 DNA를 세포, 타액, 털, 분변 등의 형태로 분리한 뒤, 특정 프라이머와 분자 태깅을 분석해 이번 결과를 온라인 연구 자료 웹사이트의 내용과 다시 대조해봤다.
한편 이번 연구의 주 저자인 엘리자베스 클레어 캐나다 요크대학 분자생태학 조교수는 기존에 이미 마련된 인프라가 생물 다양성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 결과가 “정말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이미 구축된 인프라를 계속 운영하면서 그 부산물로 매우 귀중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영국 ‘국립 물리 연구소’에서 대기질 전문가로 활동하는 앤드류 브라운 수석 과학자는 기존에 마련된 대기 품질 측정 네트워크가 생물 다양성 데이터 축적을 위한 거대한 미개발 연구 소스가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브라운은 전 세계의 대기질 측정 장치는 고도로 정형화되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매일 또는 매주 데이터를 수집한다면서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정확하게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미 플로리다대학 소속 연구원 마크 맥카울리는 공기 필터가 특정한 위치에 어떤 생물종이 존재하는지 등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리적, 시간적 규모로 이 생물종에 어떤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도 덧붙였다.
클레어 교수는 공기 필터를 통한 정기적인 모니터링은 “생물다양성 연구 분야에서 전례가 없다”면서 동물 개체의 역학을 연구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까지 살필 수 있기에 생물종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단일 샘플과 달리 이렇게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측정은 “해당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특정] 개체군의 이동, 새로운 종의 도래 또는 기후 변화로 인한 변화 등을 감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리틀페어 교수에 따르면 현재 생물 다양성 연구에선 체계적인 방법이 없다는 점이 늘 문제였다고 한다.
일례로 영국에선 과학자들이 “시민 과학자”가 수집한 데이터에 크게 의존해 생물종을 모니터링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존하다 보면 나비나 새와 같이 “카리스마있게 (눈에 띄는) 종”은 추적할 수 있으나, 균류나 야행성 동물과 같이 인기가 별로 없거나 눈으로 식별하기 생물종에 대해선 제대로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리틀페어 교수는 “공기 질 장치 네트워크에서 채집된 환경 유전자 데이터의 가장 큰 장점은 생물종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클레어 교수는 동물의 크기나 활동 등 이러한 환경 유전자 샘플링에 영향을 미치는지 요소에 대해선 아직 “알지 못하는 점”이 있다고 경고했다. 즉 현재까진 모든 생물종이 유전자를 공기 질 장치에 남기고, “그 범위 내에 있다면 모든 생물종을 골고루 동등하게 탐지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연구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연구에 앞서 공기 중 입자가 종 식별에 도움이 되는지를 조사한 선행 연구가 존재한다.
지난해 클레어 교수와 동료 연구진은 동물원의 공기엔 그곳에 사는 동물들을 식별할 수 있는 환경 유전자가 다량 포함돼 있음을 발견했다. 동물들의 숨, 타액, 털, 대변 등 공기 중으로 유출되는 유전자를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덴마크 ‘코펜하겐 동물원’의 척추동물 49종을 분류 및 감지해낼 수 있었다.
해당 연구의 주 저자이자 코펜하겐대학의 분자 생태학자인 크리스틴 보흐만은 공중에 떠다니는 유전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종들이 그곳에 있는지” 감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에 과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 도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카메라 설치 및 발자국 추정과 같은 다른 생물 다양성 모니터링 연구 방법에 비해 자원 소모량이 적고 비용도 아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소속 마티아스 옵스트 부교수는 이렇듯 공기 필터를 사용한 생물 다양성 추적 시도엔 여전히 몇 가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이러한 장치는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엔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도 있으며, 기존 검출 방식에 비해 오검출률이 훨씬 높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러한 필터엔 지나가는 새나 바람에 날리는 먼지에서 묻어나온 유전자가 쌓여있을 수도 있다.
“너무 앞서나가선 안 된다”는 옵스트 교수는 “환경 유전자 분석을 통한 생물 다양성 연구의 잠재력이 큰 건 사실이지만, 이번 연구에서도 ‘생물 다양성 모니터링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증거를 내세우진 않았다”고 강조했다.
클레어 교수는 공기 필터는 비단 도시 환경뿐만 아니라 국립공원 및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에도 종종 자리하고 있다면서 이번 연구를 계기로 각 국가에서 “생태학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새로운 장소에 이러한 필터를 설치하고, 포착된 유전자를 보존 및 보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여러 나라에서 [공기 필터에 채집된] 환경 유전자를 거의 즉시 버리고” 있는데, “이번 시범 연구를 통해 이러한 표본의 생태학적 가치를 깨닫고 데이터를 보관 및 연구 활동이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놀라운 보물창고가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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