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흑 같은 한밤중 북한에선 두 사람이 은밀히 만났다. 한 사람은 위협을 무릅쓰고서라도 BBC와의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밝힌 주민이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북한 내부의 상황을 외부로 알리며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도청되지 않는 안전한 장소에서 해당 주민을 만난 정보원은 BBC가 준비한 질문을 전달한 뒤 그 답변을 메모했다.
이후 상황을 살핀 뒤 안전을 확인한 뒤 우리에게 답변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답변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전달됐다. 한 번에 한 개씩 답변을 전달하는 이 과정 또한 너무나도 위험했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수개월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조사의 시작일 뿐이었다. BBC는 북한 당국의 국경 봉쇄에 따른 주민의 생활 실태를 파악하고자 했다.
북한 주민들은 외부인, 특히 언론인과는 대화할 수 없다. 만약 북한 당국이 이를 눈치챌 경우 이들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 와중에 지난 2020년 1월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며 갑자기 국경을 봉쇄한 이후 안 그래도 실태 파악 및 보도가 어려웠던 북한은 외부의 시선이 거의 닿지 않는 존재가 됐다.
외교관 및 구호 단체가 북한을 떠나면서, 보통 기자들에게 현지 상황을 전해 듣던 모든 정보 출처가 사라져버렸다. 또한 북한 주민들의 탈북 또한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이들의 경험을 듣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또 식량을 구하는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당국의 국경 폐쇄가 이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야기하고 있으리라 의심할만한 충분한 이유도 있었다.
또한 작년부터 심각한 식량 부족 및 기근 가능성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보고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내부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고자 평범한 북한 주민 3명을 인터뷰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됐다.
먼저 우리는 북한 주민들과 긴밀히 협력하면서도 이 일의 위험성을 잘 이해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탈북민 지원 단체 ‘리버티 인 노스 코리아(LiNK)’의 박석길 국장은 10년 이상 탈북자들과 일해온 인물로, 이번 인터뷰가 물론 위험하지만 중요하고도 가치 있다고 평가했다.
박 국장은 “(인터뷰에 응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그 위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북한 주민은 없다”면서 “그런데도 하고자 한다면 이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북한 내부 주민들과의 모든 대화, 심지어 사소한 정보일지라도 매우 귀중하다. 왜냐하면 (북한에 대해선) 거의 알고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우리는 북한에 정보원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한국의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 NK와 협력했다.
이들을 통해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주민 3명을 찾을 수 있었다. 북한 내부의 상황을 최대한 단편적인 측면이 아닌 다양한 측면으로 바라보고 싶었기에 다양한 지방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자 했다.
우리는 BBC가 무엇이고, 이번 인터뷰 내용이 국경 너머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 주민들은 인터뷰에 동의했다.
이상용 ‘데일리NK’ 편집국장은 “이들은 북한 내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전 세계에 알려줄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면서 “국제 사회가 (북한의 상황에) 귀 기울여 주길 바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지난 13년간 정보원들과 함께 일하며 북한 관련 정보를 은밀히 들여오고 있는 인물로, 자신의 연락 방법은 안전하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이 국장은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들을 더욱 안전히 지키기 위해선 전반적인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그렇게 몇 달간, ‘데일리 NK’의 정보원들은 주민 3명을 만나 BBC의 질문을 전달하고 답변을 받아 전달해줬다.

물론 충분한 양의 정보를 얻지 못할까 봐 걱정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기사로 작성하지도 못할 정도로 단 한 줄짜리 짧은 답변이 돌아올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분명 우리에게도 이는 도박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답변을 전달받았을 때, 우리는 그 상세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들려줬으며, 이들의 입으로 들은 북한 내부의 상황은 상상보다 훨씬 참혹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끔찍한 인도주의적 위기 및 인권 유린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답변을 받은 후, BBC는 최대한 이를 검증하고자 했다.
다행히도 인터뷰에 응한 주민 3명 모두 서로의 이야기를 확증해줬다. 격리 규칙과 새로운 법 등 이들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또한 3명 모두 식량과 의약품이 부족하다고 했으며, 갈수록 주민 단속이 늘어나고 처벌 또한 강화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희망과 공포를 느끼는 부분도 대부분 겹쳤다.
물론 이들의 이야기에서도 눈에 띄는 차이도 있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수도 평양은 다른 국경 도시에 비해 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감시나 통제 또한 평양에서 더욱 심했다. 이는 우리도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이러한 검증 과정을 거친 뒤 BBC는 해당 인터뷰 내용을 북한 전문 매체 ‘NK 프로’의 전문가들에게 보여줬다.
북한에서 국영 미디어는 사상 선전을 위한 내용이 대부분이긴 하나, 폐쇄적인 이곳의 거의 유일한 정보 출처 중 하나다. 정승연 기자는 ‘NK 프로’의 북한 국영 미디어 전문가로, 이러한 국영 미디어를 매일 모니터링하며 실제 상황에 대한 단서를 찾고 있다.
정 기자는 “우리는 북한이 매우 비밀스러운 국가라고 생각한다”면서 “물론 북한은 내부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진 않지만, 그래도 힌트를 남긴다”고 덧붙였다.
북한 당국이 식량 위기 등 사회 문제를 언급한다는 건 실제로는 “정말 심각한 문제”임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정 기자의 도움을 받아 BBC는 식량 부족의 심각성, 주민들이 언급한 봉쇄 조치, 새롭게 도입 및 강화된 법과 처벌 수위 등에 관한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정 기자는 2월 자 신문 보도 하나를 보여줬다. 북한의 당원들이 당국에 쌀을 기부해 찬사를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정 기자는 “국가가 국민들로부터 곡물을 공급받고 있다는 건 현재 북한의 식량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BBC는 식량 가격 및 거래와 관련해 접할 수 있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국경 지역의 모습을 담은 위성 사진도 살폈다.
아울러 이번 인터뷰 내용이 전체적인 그림을 담고 있진 않더라도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해 신뢰할 만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한국 정부나 유엔(UN)의 보도자료 및 여러 소식통과 상호 참조했으며, 북한 당국이 새로 제정한 법의 본문을 샅샅이 파악했다.
한편 기사로 작성돼 대중에 공개된다는 점을 고려해 주민들의 신변을 보호하고자 여러 세부 사항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인터뷰에 나서준 이들의 용기 덕에 우리는 북한의 현 상황에 대해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알게 됐다. 박 국장은 “전 세계는 지금 북한 주민들의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모르고 있다”면서 “이러한 인터뷰 또한 (북한 사회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주진 못한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우리는 현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깨닫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BBC가 ‘데일리 NK’를 통해 인터뷰에 응한 주민들의 신변을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당시, 이들 모두 안전하게 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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