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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욘산’에서 끊임없이 달아나야만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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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너머 보이는 마욘산

BBC/VIRMA SIMONETTE
완벽한 원뿔형에 가까운 마욘산의 모습

미로처럼 복잡한 텐트촌 안에서 날생선 냄새가 공중에 퍼져나가자 모네 옥살레스(40)는 과자와 빵을 판매하고자 부지런히 움직였다.

오전 11시 무렵, 텐트촌 안은 익숙한 듯 점심 장사를 위한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그러나 이곳은 마을이나 집이 아닌 대피소 내 텐트촌이다.

옥살레스 등 주민 수천 명은 근처에 자리한 활화산 때문에 이곳에 머물고 있다.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비콜 지방의 ‘마욘산’은 그림 같은 외형을 자랑하나, 아직도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위협적인 존재로, 언제 용암을 내뿜으며 파괴적으로 폭발할지 모르기에 주민들은 아무런 기약 없이 대피소에서 살아가고 있다.

평생 마욘산의 영향권 안에 살아온 이들에게 대피소에서의 삶은 일상이다. 이들은 몇 주, 심지어 몇 달까지도 이곳에 머무르곤 한다.

귀노바탄 마을에서 식료품을 파는 옥살레스 또한 판매하는 물건을 모두 대피소로 옮겨왔다. 대피소에서 빨래하는 이들을 위한 작은 세제 팩도 들여놨다.

옥살레스는 살면서 무려 5번이나 대피소에서 살아본 적 있다고 했다. 1주일 전에도 대피소로 피신했으나, 이후 텐트를 2번이나 옮겨야만 했다.

가족의 유일하게 소유한 땅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화산이 곧 잠잠해지길 바란다는 옥살레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은 가난하기에 마을을 완전히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5살 난 어린 딸은 집을 떠나온 이후 줄곧 열이 난다.

“우리가 사는 마을은 아름답습니다. 마욘산 폭발이 유일한 큰 문젯거리죠. 이는 자연재해입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마을을 떠나 대피소로 피신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한편 옥살레스는 아이들이 화산재를 계속 들이마셔 혹시 아프진 않을까 걱정된다고도 덧붙였다.

옥살렉스의 네 가족은 조금씩 나오는 식수를 빨간 양동이 하나 가득 채워 다 함께 사용한다.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충전식 선풍기를 작동시키기 위해 전기도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옥살레스는 “이 상황을 견디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냐”고 반문했다.

텐트 안에서 식료품 진열대를 준비 중인 모네트 옥살레스의 모습

BBC/VIRMA SIMONETTE
모네트 옥살레스는 식료품 진열대를 화산 피난처로 옮겨 장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어두운 밤 붉은빛으로 타오르는 용암 분출의 모습

BBC/VIRMA SIMONETTE
마욘산에서 용암이 분출되는 모습. 밤에는 타는 듯한 붉은 빛으로 빛난다

또 다른 대피소에선 툭툭이 운전사 벤자민 나솔(53)을 만났다.

나솔은 마을에 두고 온 작은 돼지 농장이 걱정된다고 했다. 나솔은 돼지들에게 먹이를 주고 도둑들로부터 농장을 지키고자 매일 밤 몇 시간씩 달려 카말라그 마을로 향한다.

“이런 삶에 익숙하다”는 나솔은 벌써 살면서 3번째 대피소 살이라며, 마욘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암을 봐도 조금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피곤하거나 지쳐도 마을에 가서 농장을 돌본다”는 나솔은 “그 이후 대피소에 있는 가족들에게 돌아와야만 한다”고 했다.

한편 이번 달 초 필리핀 현지 과학자들은 마욘산 분화구에서 지진과 낙석 발생이 잦아졌다며, 화산 활동이 활발해졌다고 경고한 바 있다. 현재 마욘산에는 폭발 가능성 5단계 중 3번째로 높은 경보가 내려진 상태다.

실제로 마욘산은 비록 느리긴 하나 폭발 중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언덕 높이 자리한 관측소에서 근무하는 화산학자 폴 알라니스는 마욘산을 관찰하며 경보 단계를 고민한다. 이 경보 단계에 따라 대피해야 하는 주민 수가 달라진다.

지난 9일 3단계가 내려지자 최소 1만3000여 명이 즉시 대피소로 향했다. 이후로도 며칠간 수천 명이 더 대피소로 향했다.

알라니스는 시각적 정보뿐만 아니라 육안으로도 보이지 않는 신호를 파악하고자 지진계 등을 사용해 지하의 움직임도 측정한다.

알라니스는 지난 2018년 마지막 용암 분출 때 만들어진 분화구 윗부분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며, 이는 마욘산 활동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신호라고 했다. 실제로 그 분화구 윗부분은 올해 4월부터 부풀어 오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대피소 내 텐트들이 줄지어 자리한 모습

BBC/VIRMA SIMONETTE
마욘산 주변 주민들에게 대피소에서의 삶은 일상이 됐다

지난주 관측소에선 불안감이 감돌았다.

알라니스는 “언제든 화산의 상태는 악화할 수 있다. 주민들을 대피시키고자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화산학자들은 도지사 등 지역 당국에 마욘산의 상태를 설명해 이들의 재난 대책 방안 수립을 돕는 역할도 한다.

알라니스는 용암이 느리게 흐르고 있다며, 이는 2가지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폭발적으로 분출하기엔 화산 내부에 뜨거운 가스가 충분하지 않거나, 혹은 녹은 암석이 경로를 방해해 가스가 지표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 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다른 이유도 살펴봐야 한다”는 알라니스는 “그러나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현재로서는 정확한 화산 분출 시점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없습니다.”

활화산만 24개인 필리핀은 역사적으로 화산 활동이 활발해 ‘불의 고리’라고도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자리한 국가다.

마욘산 주변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떨어진 바로 그 주에 수도 마닐라 남쪽에서는 마욘산과 관련 없는 규모 5.5의 지진이 발생해 고층 건물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대피해야만 했다.

한편 마욘산은 그림 같은 외형 덕에 필리핀에서도 가장 유명한 화산으로 손꼽힌다. 가장 완벽한 원뿔형 모양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게다가 분화구 위에서 붉게 타오르는 용암도 관광객들도 끌어모은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사람들은 비콜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속 여성을 상상하기도 한다. 또한 2018년 미스 유니버스에 오른 필리핀계 호주인 카트리오나 그레이는 마욘산 용암 빛깔을 담은 드레스를 입고 출전한 바 있다.

한편 마닐라에서 직장에 다니는 자이라 산 파스쿠알(39)에겐 대피소에서의 삶이 특히 더 어렵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장례 절차를 텐트촌으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파스쿠알은 비콜 지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대피소로 이동 중이라는 가족들의 전화를 받았다. 이에 너무 당황해 “그럼 어떻게 치러야 하냐”고 자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텐트촌에 와보니 자신이 어린 시절 기억했던 것보단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다.

“(대피소에서도)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농담한다”는 파스쿠알은 “이게 바로 이들의 대처 방식이다.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실 고요함이 깃든 밤, 대피소 주민들에겐 상황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동안 웃고 떠드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곳 텐트촌에서 도는 소문에 대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요리 중인 로저 아실로

BBC/VIRMA SIMONETTE
로저 아실로는 화산이 폭발해도 대피소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한편 위험 지역의 주민들은 의무적으로 대피해야 하나, 로저 아실로(72)처럼 집을 떠나지 않겠다며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아실로는 나무 뒤에 숨어 귀노바탄 마을 주민들을 대피소로 이송하는 트럭을 피했다.

아실로는 지난 수십 년간 살면서 자신은 화산 폭발에 준비됐다고 했다. 언제 짐을 챙겨 떠나야 하는지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실로의 아들 또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함께 남았다.

대피소로 떠나느니 친구가 돈을 주며 맡긴 돼지 2마리를 돌보는 일이 더 좋다는 아실로는 밤이면 집 밖 대나무 벤치에 앉아 빛을 내며 흐르는 용암을 지켜본다.

아실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용암을 내뿜는 화산을 볼 때마다 화산 활동이 멈추기를 항상 기도한다”고 했다.

“무섭긴 하지만 전 준비돼 있습니다.”

CP-2022-0043@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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