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민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충성하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켰다. 비록 벨라루스의 중재로 반란은 종료됐으나, 러시아 현지에선 여전히 각종 비상조치가 시행 중이다.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에 타격을 입힌 것으로 보이는 이번 사태를 둘러싼 여러 질문을 살펴봤다.
푸틴의 다음 행보는?
하루 동안 발생한 이번 반란은 푸틴 대통령이 집권 20여 년 만에 맞이한 가장 큰 도전이었다.
당장은 상황이 진정된 것처럼 보이나, 러시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푸틴 대통령이 강해 보이기는커녕 심하게 타격받은 듯하다는 설명이다.
평소 배신을 혐오하는 푸틴 대통령의 증오는 24일 아침 러시아 전역에 방송된 TV 연설에서도 잘 드러났다.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이 “등 뒤에 칼을 꽂는” 반역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이후 푸틴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대통령 연설 일정도 아직 없다. 다만 25일 국영 TV와 이번 반란 전에 사전 녹화한 듯한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현재 수도 모스크바에선 여전히 비상 대테러 조치가 시행 중이나, 푸틴 대통령이 수도에 머물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분노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공격으로 표출하거나, 혹은 이번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 러시아 내부 세력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폴란드의 라데크 시코르스키 의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이번 사건으로) 자신의 자리가 흔들리는 것으로 본 사람들을 숙청할 것”이라면서 푸틴 대통령의 정권이 “더 권위주의적이고 더 잔인한” 방향으로 변화하리라 예측했다.
벨라루스에서 프리고진의 향후 행보는?
이번 반란의 배후인 프리고진은 현재 자유인 신분이다. 러시아 군 수뇌부를 축출하려고 했던 프리고진에겐 무장 반란 혐의가 제기됐으나, 러시아 크렘린궁은 형사 입건을 취소했다.
그러나 크렘린궁과 바그너 그룹 사이에 이뤄진 합의의 세부 내용은 알려진 바 없다.
한편 러시아 전문가들은 프리고진이 이렇게 조용히 사라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고 있는 바그너 용병 수만 명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에게도 오랫동안 그림자처럼 자신을 위해 일해주던 중요한 인물이었다.
시리아 내전부터 2014년 크림반도 합병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크렘린궁이 나서기 껄끄러운 일을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에게 굴욕감을 안겼다고 표현하는 이번 반란 이후 프리고진의 안전 보장 및 향후 역할에 대해선 의문투성이이다.
프리고진이 처벌받지 않는 대신 벨라루스로 가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말로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 간다면 알렉산더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얼마나 그를 통제할 수 있을지, 그리고 만약 바그너 용병대가 프리고진을 따라 벨라루스로 향할 경우 이들이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바그너 그룹의 운명은?
갑작스럽게 무장 반란을 일으키기 전 바그너 용병 수만 명은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독자적인 용병단으로서의 바그너 그룹의 시대는 이미 저물던 상태였다.
프리고진의 바그너 그룹은 정규군으로 흡수되라는 압박에 계속 저항해왔으며, 러시아 국방부에 대한 이러한 반발심이 장기간 반목을 일으켜 결국 반란으로 이어진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란이 짧게 마무리되고 프리고진이 망명길에 오르게 되면서 바그너 그룹의 향후 행보에 관한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먼저 반란에 연루된 용병들에 대한 기소는 취하된 것으로 보인다. SNS에 올라온 영상에 따르면 바그너 용병들은 자신들이 앞서 군사 기지를 장악했던 남부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나고 있다.
로스토프나도누와 수도 모스크바의 중간 지점인 보로네시의 알렉산더 구세프 주지사 또한 바그너 군대가 보로네시를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이 이제 러시아 정규군에 협력해 통합될 것인지, 그렇다고 해도 정규 군인들이 이들과 기꺼이 함께 복무할 지는 불분명하다.
현재 러시아 국영 언론은 이들이 우크라이나 내 전장으로 다시 돌아가리라 추측하나, 과연 이들이 이토록 간단하게 기존 전쟁터로 돌아갈지도 의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프리고진이 정말 벨라루스로 간다면 바그너 용병들이 대장을 따라갈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수도를 공격하기에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칠 영향은?
비록 바그너 용병 중엔 자유를 대가로 최전선 복무에 응한 재소자들이 많지만, 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던 군대였다. 일례로 러시아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를 점령할 당시 바그너 용병의 기여가 컸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반란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는 게 크렘린궁의 설명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 군인들 또한 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명히 들었을 것이고, 이러한 반란 소식은 군의 사기를 꺾을 수도 있다.
일부에선 이번 반란 이후 러시아에서 일어날 일에 따라 경쟁 부대 간 불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추측한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러시아가 더 큰 병력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긴 하지만, 국경 너머 러시아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안정한 상황을 기회로 이용할 수 있길 바랄 것이다.
우크라이나 군은 러시아군이 점령한 영토를 되찾고자 반격에 나섰으며, 이번 러시아의 상황이 “기회의 창”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빌 테일러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군은 바그너 그룹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으로 드러난 러시아의 전술적 약점을 이용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등은 미리 알고 있었나?
프리고진의 이번 반란으로 크렘린궁은 허를 찔린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 정보기관은 이러한 반란 계획 징후를 포착해 이번 주 초 조 바이든 대통령 및 의회 주요 인사들에게 이미 보고했다고 한다.
CNN은 미 정보당국은 프리고진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서 무기, 탄약 등의 군사 장비를 대량으로 모으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뉴욕타임스’지에 따르면 이러한 보고를 접한 바이든 대통령은 혼란한 정국에서 러시아가 보유한 대규모 핵무기를 우려해 프랑스, 독일, 영국 정상과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아울러 ‘뉴욕타임스’지는 미 정보당국은 지난 몇 달간 점점 악화하는 프리고진과 러시아 국방부 수뇌부 간 알력을 추적했으며,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그너 그룹과 러시아 정규군 모두에게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결론을 지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지는 미 당국은 이번 달 중순부터 벌써 프리고진이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음을 알아챘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 10일 러시아 국방부가 내린 법령이 도화선이 됐다. 당시 국방부는 바그너 그룹과 같은 의용 부대에 정부와의 계약 체결을 명령했는데, 이는 사실상 바그너 그룹을 러시아군이 인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미 관료들은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도부에 보고할 만큼 충분한 (반란 계획) 신호가 감지됐다 … 무언가 벌어지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반란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정확히 프리고진이 계획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워싱턴 포스트’지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 역시 러시아 정보부로부터 프리고진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첩보를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정확히 언제 해당 소식이 푸틴 대통령의 귀에 들어갔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보도에 따르면 “분명 (반란 개시) 24시간 전”엔 보고받았다고 한다.
러시아 내부 반응은?
반란이 일어났을 당시 푸틴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이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이를 얼마나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는지, 또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할 필요성을 느꼈는지 알 수 있다.
유명 러시아 전문가인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텔레그램에 “많은 러시아 내부 엘리트들이 일이 그렇게까지 진행됐고, 적절한 시기에 대통령이 적절히 반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두고 푸틴 대통령을 비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번 일로 푸틴 대통령은 위상에 타격을 입었습니다.”
한편 러시아 국민들의 생각에 대해선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러시아 지도부 입장에선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나는 바그너 그룹에 박수를 보냈던 자국 민간인들의 모습이 우려될 것이다.
바그너 용병들이 반란 기간 잠깐 장악했던 해당 도시를 떠나자 군중 중엔 환호하거나 박수 치고, 사진을 찍는 등 이들을 지지하는 듯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로스토프나도누 주민 중엔 24일 바그너 용병이 도착하자 황급히 기차를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던 이들도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