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시에선 전 시장이 혼외정사 스캔들에 휩싸이며 불명예스럽게 사임하게 되면서 26일(현지시간) 시장 보궐 선거가 열렸다. 그리고 토론토 시민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절대로 적지 않았다. 무려 102명이 입후보해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102명 중엔 개 ‘몰리’도 포함돼 있다.
올해 6살 된 울프 허스키 종 강아지 몰리는 주인인 토비 힙스와 함께 겨울철 도로의 “소금 공격을 멈추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힙스는 겨울철 과도한 제설제 사용이 몰리처럼 발이 부드러운 강아지의 발바닥을 상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집값 안정,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업체 대상 증세, 신규 주택 및 상업용 건물의 화석 연료 난방 금지 등의 정책도 추진하겠다는 설명이다.
만약 자신이 당선된다면 몰리를 토론토의 첫 번째 명예 개 시장으로 지정할 것이라는 힙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시청에 개가 있다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변화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힙스에게 이번 선거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토론토시는 기존에 6개의 지자체로 나뉜 곳을 25년 전인 1998년 통합해 탄생한 도시로, 이번 선거는 소위 ‘메가 시티’가 된 토론토의 25년 역사상 처음 열리는 보궐선거다.
지난 2014년 처음 당선된 뒤 3번이나 재선에 성공하며 오랫동안 시장을 지냈던 존 토리가 혼외정사 스캔들로 사임하면서 이번에 보궐선거가 열리게 됐다.
토리 전 시장은 2014년 당선됐을 때만 해도 롭 포드 전 시장 시절을 끝낸 것에 높은 평가를 받으며 환영받던 인물이었다. 포드 전 시장은 재임 중이던 2013년 코카인 흡연을 인정하며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그러나 이후 시를 위한 뜻깊은 미래 비전이 부족하고, 안 그래도 전 세계에서 물가가 높은 축에 속하는 토론토에서 갈수록 심해지는 불평등 문제를 막지 못하는 등 토리 전 시장은 여러 비판에 직면했다.
현지 ‘토론토 스타’지에 실린 어느 칼럼에선 토리 전 시장을 “(시민들에게) 자극이나 영감이 되지도 않으며, 너무 지나치게 조심스럽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 및 이후 토론토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많은 시민들이 토리 전 시장의 재임 기간 총기 폭력, 노숙자 문제, 집값 상승, 대중교통 내 폭력 사태 등이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토리 전 시장은 지난해 10월 또 한 번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당시 시장 선거에선 토리 전 시장의 재선이 너무나도 명백해 보였기에 입후보에 나선 사람은 수십 명에 불과했다.
그러다 결국 스캔들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며 토리 전 시장은 시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지난 2월 ‘토론토 스타’지에 68세로 기혼인 토리 전 시장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31세의 직원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폭로 기사가 실린 것이다. 기사가 세상에 공개된 지 몇 시간 만에 토리 전 시장은 사임을 발표했다.
넬슨 와이즈먼 토론토대 정치학 명예 교수는 토리 전 시장이 물러나면서 오는 26일로 예정된 보궐 선거는 그야말로 “아무나 나갈 수 있는 공개 경주”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선거와 달리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경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주에 참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후보 등록에 필요한 비용 250캐나다달러(약 24만원)와 시민 25명의 서명만 있으면 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미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북미의 다른 대도시와 달리 토론토에선 정당별로 후보자를 내세우지 않는다. 즉 최종 후보 명단을 추리기 위한 당내 공천 절차가 없다.
한편 카렌 채플 토론토대 도시학 학과장은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는지 시험해보고자 입후보하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채플 학과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마치 도박꾼과 같은, 라스베이거스에서 게임을 즐기는 이들과 같은 느낌”이라고 비유했다.
한편 이렇듯 엄청난 후보 수와 역대 토론토 시장 선거에서 보여준 낮은 투표율 등을 고려하면 이미 상당히 이름을 알린 후보만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유력 후보는 누구일까. 토리 전 시장과 정치적으로 반대 성향으로, 1992년부터 공직 생활을 시작한 올리비아 차우 후보를 꼽을 수 있다. 차우 후보는 좌파 성향의 신민당(NDP)에서 전설적인 당수로 불렸던 고 잭 레이턴의 아내이기도 하다.
그 외에 경쟁력 있는 후보로는 지역 사회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알린 전현직 시의원들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채플 학과장은 개 몰리부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세 청년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다양한 후보를 살펴보다 보면 토론토가 얼마나 파편화된 곳인지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토론토의 인구는 이민자 및 새로 유입된 주민 등을 포함해 거의 300만 명에 이른다. 이렇듯 북미에서 인구가 4번째로 많은 도시인 토론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로 꾸준히 언급된다.
그러나 워낙 주민들의 배경 및 환경이 서로 다른 탓에 토론토시의 미래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공존한다.
토론토의 집값이 충격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주민들도 있지만, 타인가 함께 지하 방에 살며 월세를 내야 하는 이들도 있다.
도시 외곽에서 출퇴근하는 이들은 교통체증을 견뎌야 하는 반면, 도심에 거주하는 이들은 지하철에서 자리를 차지하고자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러한 다양한 삶의 방식과 의견은 토론토 시장에 입후보한 후보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례로 경찰청장 출신인 마크 손더스 후보는 범죄 해결을 위해 시의 경찰 예산을 늘리겠다고 약속하는 한편, 차우 후보는 시 소유 토지 내 신규 주택 건설을 약속하며 토론토의 주택 위기 해결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또한 소외된 지역 사회를 위해 일해온 청년 정책 분석가 출신 클로이 브라운 후보는 “토론토엔 현재 더 많은 경찰이 필요하지 않다”고 직설적으로 지적하며 대신 시민들의 정신 건강 지원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다양한 후보군에 대해 채플 학과장은 “토론토시가 어떤 도시인지 반영하는, 현실의 축소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100여 명의 후보가 등록한 상황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존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포용할 기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적은 득표율로도 차기 시장에 당선될 수 있다는 게 채플 학과장의 설명이다.
“극소수가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개 후보’ 몰리의 주인인 힙스 또한 이번 선거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7살짜리 아들과 대화하며 이번 선거에 출마하게 됐다고 한다.
힙스는 출마를 결정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아들에게 ‘그래, 우리가 이기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럼 기분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어봤다”고 언급했다.
“아들은 제게 ‘화가 나고, 슬프 것이다. 그러나 아빠가 노력했다는 것에 행복할 것’이라고 답하더군요.”
“그거면 (출마하기)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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