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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통보제: ‘두 번 버림받는 아이들’…왜 그동안 출생신고조차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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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서울의 한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집단 바이러스 감염으로 신생아 4명이 같은 날 숨졌다. 감염을 피한 신생아들은 곧바로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끝까지 혼자 남아있던 아기가 있었다. 보호자도 출생기록도 없어 이름을 알 수 없는 아기였다.

아기가 처음 발견된 곳은 서울 강서구의 한 보육원 앞. 미숙아로 태어났던 아기는 보육원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한 후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뇌병변 1급 판정을 받고, 이대 목동병원과 서울의료원을 거쳐 2018년 2월 서울 아동병원에 입원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도, 의사표현도 할 수 없던 아기는 3년이 넘도록 병실에 홀로 누워만 지냈다. 찾아오는 사람도,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2020년 12월 병원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장례는 서울시립승화원 내 마련된 2평 남짓한 작은 빈소에서 공영 장례로 치러졌다. 조문객 대신 국화꽃 몇 송이로 장례는 단 몇 시간 만에 끝났다.

화장된 유골은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에 안장됐다. 추모의 집은 1년에 하루, 무연고 사망자들의 유골을 모아 땅에 뿌리는 합동의례제 날에만 문이 개방된다.

‘강서구 무명아기’의 유골도 5년 동안 아무런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무연고자들처럼 ‘산골(유골을 화장해 그대로 땅에 묻거나 산이나 강, 바다 등에 뿌리는 일)’ 작업을 거쳐 처분될 예정이다.

서울시에서 공영 장례를 맡아 진행하는 업체에 따르면, 매년 2~3명의 ‘무명아동’ 장례가 있다고 한다. 이처럼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진 아동 외에도 실제 얼마나 많은 아동들이 이름도 없이 살다 사라지는지 알 수 없다. 관련기관들은 기본적인 출생신고조차 안돼 그 숫자를 집계하거나 추산하기조차 어렵다고 밝혔다.

얼마나 많은 ‘무명아동’이 있나?

‘강서구 무명아기’가 있던 서울 아동병원에는 현재 37명의 이름없는 무명아동이 있다. 대부분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처음 발견된 각 시·군·구청에 ‘행려환자’로 등록돼 의료급여를 받고 있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39년 동안 입원해 이미 성인이 된 환자도 있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가 지난 3월 251개 아동복지시설을 조사한 결과, 시설에 있는 아동 가운데 출생신고가 안 된 미등록 아동은 최근 2년간(2019~2020년) 14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설 밖 가정이나 전국 각지에 최소 8000명에서 최대 2만 명의 미등록 아동이 있을 것으로 본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채희옥 팀장은 “사실 그 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어떠한 공적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고, 간접적으로도 그 수를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구나 출생 등록될 권리

2015년 아동기관과 인권단체들이 연대해 조직한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미등록 아동 문제 해결을 위해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해 왔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 및 제3자에 아동의 출생 사실을 국가에 통보할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로, 영국·미국·독일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시행 방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태어난 아동의 출생사실을 즉시 공적기록으로 등록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 법무부도 2021년 6월 의료기관에 출생통보 의무를 도입하는 내용의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아기가 태어나면 산부인과 등 출산 관련 의료기관이 7일 안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출산모의 성명과 아기의 성별 등 출생 정보를 알리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해당 출생 정보를 다시 7일 안에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알려 출생신고가 누락되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의료계는 ‘출생통보제’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우선 행정업무를 의료기관이 대신하는 것은 공무원법에 반하며, 또 출생신고를 피하고자 병원 밖에서 출산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이런 가운데 부모가 아기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 병원 등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출생 사실을 알리도록 하는 내용의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 개정안'(출생통보제)이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는 최근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등 출생신고가 안 된 영아가 살해·유기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법제화에 속도를 내왔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재석 267명 가운데 찬성 266표, 반대 0표, 기권 1표로 이 같은 내용의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가결 처리했다.

법안은 공포일로부터 1년 후 시행될 예정이다.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의료기관장은 출생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심평원에 출생 정보를 통보해야 하며, 또 시장·읍장·면장은 출생일로부터 한 달 이내 출생신고가 안 되면, 모친 등 신고 의무자에게 7일 이내에 출생신고를 하도록 통지해야 한다. 이후에도 신고가 되지 않으면 법원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국내에서 아동의 출생신고는 사실상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가족관계등록법(제46조)에 따르면 아동의 출생신고 의무자는 부모다. 만약 부모가 하지 못하는 경우, 제2순위로 동거하는 친족, 3순위로 의사 또는 조산사가 할 수 있도록 규정해놨다.

지자체장이나 검사(46조 4항)도 출생신고를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이뤄진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이러한 규정 자체를 모르거나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해당 아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없으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혼인 외 자녀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사실상 친모만 출생신고가 가능했다. 친부의 경우 아이가 다른 사람의 친생자가 아니라는 점을 직접 증명해야 했고, 친모의 이름과 주소, 주민번호, 미혼임을 입증하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때문에 생모와 연락이 끊기면 친부 혼자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2015년 미혼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일명 ‘사랑이법'(가족관계등록법 57조 2항)이 신설됐지만, 생모의 인적사항 중 일부라도 알거나, 엄마의 소재를 알아도 협조하지 않으면 친부 혼자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은 지난해 6월 판결에서 “모의 인적사항은 알지만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는 경우 또는 모의 소재 불명이나 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 발급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에도 (사랑이법이)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특히 판결문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될 권리’를 가진다”며 아동이라면 누구나 ‘출생등록될 권리(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

문제는 기본적인 출생기록조차 없다 보니 최소한의 법적보호와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채 팀장은 “미등록 아동들은 영유아들이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각종 예방접종이나 검진 등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매우 비싼 병원비와 약값을 내야 한다. 또 교육에 있어서도 공적으로 등록 돼 있지 않아 입학통지서나 취학통지서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가정 내에서 아동이 방치되고 있거나, 학대 및 유기 등 범죄에 노출돼도 지자체나 기관에선 파악조차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분산된 출생신고 시스템도 무연고 아동의 등록을 어렵게 한다고 아동기관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현재 출생등록 업무는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다. 가족관계등록은 법원이, 주민등록은 행정안전부, 아동복지 정책은 보건복지부, 또 출생신고는 각 관할 지자체가 맡고 있다.

하지만 ‘미등록 아동’의 실태를 조사하고 관리하는 전담 부서가 없다 보니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이 발견되더라도, 이들의 정보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곳이 없다.

한 아동기관 관계자는 “위기아동이 접수돼도 출생신고 과정을 명확히 안내하는 기관이나 매뉴얼이 없다”며 “어떤 법률과 어떤 내용을 참고해야 할지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2013년 7월, 서울 아동병원에 13년간 ‘행려환자’로 입원해 있던 아동이 처음으로 병원이 아닌 생활시설로 옮겨졌다. 13년 만의 첫 외출이었다. 10년 넘게 병원에서만 지내던 아이가 처음으로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나갈 수 있었던 뒤에는 한 사회복지사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있었다.

당시 광진구청에서 행려환자 관리를 맡았던 홍지유 사회복지사는 문서에 의료급여를 받는 ‘행려환자’ 가운데 아동이 있다는 것과 13년 동안 병원에 있다는 기록을 보고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홍 복지사는 “처음에는 허위 청구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 어떻게 아기가 13년 동안 혼자 병원에 있을 수 있을지 의심하며 확인해보겠다는 생각에 병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중증 뇌성마비를 앓고 있던 아이를 직접 만났다.

서울시에서 공영 장례를 맡아 진행하는 업체에 따르면, 매년 최소 2~3명의 '무명아동'의 장례가 있다

BBC
서울시에서 공영 장례를 맡아 진행하는 업체에 따르면, 매년 최소 2~3명의 ‘무명아동’의 장례가 있다

’13년 만의 외출’

그는 “문서로만 봤을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그날 가서 본 충격은 정말 컸다”며 “제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 입장에서 아이가 10년 동안 병원에만 있어야 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이끌고 돌아온 그는 아이가 옮겨갈 수 있는 장애시설을 찾았다. 그리고 수차례 시설을 방문하고 설득을 거듭한 끝에, 광진구에서 보장기관으로서 성과 본을 창설한다는 전제조건을 걸고 입소허가를 받아냈다. 그렇게 붙여준 이름이 정명진이었다.

성과 본을 만들고 주민등록 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먼저 명진이가 처음 발견됐을 당시 상황을 기록한 ‘기아발견 보고서’가 필요했다. 하지만 발견 당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직접 아이를 인계한 경찰을 찾아 발견 당시 기록을 작성했다.

홍 복지사와 광진구청의 노력으로 명진이는 병원 밖을 나와 장애인 생활시설로 옮겨졌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생긴 아이는 학교도 다닐 수 있었다. 명진이는 시설에서 3년간 생활하다 질환이 악화돼 숨졌다.

“장례식이 있던 날 갔었거든요. 그런데 장례식에 가니깐 (아이가 있던) 시설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이 다 나와 계시더라고요. 근데 다 울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고마웠어요.”

그는 “법과 제도가 조금만 문턱이 낮았더라면, 조금 더 아이의 입장을 생각했다면, 명진이가 십 몇년 동안 병원에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복지사는 무엇보다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관심 깊게 보는 거죠. 내가 보고 있는 이 단 몇줄의 서류 코드명으로 적힌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 있게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러스트: 나리 킴

CP-2022-0043@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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