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제인 구달의 남편 휴고 반 라윅은 구달과 새끼 침팬지가 서로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사진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침팬지를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60년 7월 14일, 당시 26세였던 제인 구달이 탄 배가 탄자니아 탕가니카 호수 기슭에 닿았다. 지금은 곰베 스트림 국립공원이 된 이곳에서 침팬지 행동에 대한 그의 획기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과학 분야 학사 과정을 마치지 않은 학생이었던 구달은 선입견 없는 열린 마음으로 야생의 대상들을 관찰했다고 말했다. 당시엔 논란의 여지도 있었지만, 그는 침팬지를 숫자로 표시하던 관습에 반기를 들어 침팬지에게 이름을 붙였다.
이 시기 구달을 촬영한 사진이 한 장 있다. 이 사진에는 과학계 표준에 맞서는 그의 도전과 신선한 접근법이 담겼다. 그리고 이 사진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훗날 그의 남편이 된 네덜란드 사진작가 휴고 반 라윅은 1962년 곰베에 합류해 구달의 사진을 수천 장 촬영했다. 그중 1964년 ‘플린트’라는 새끼 침팬지와 함께 있는 구달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훗날 기념비적인 사진이 됐다.
사진 속에서 구달은 몸을 웅크린 채 플린트를 향해 오른팔을 내민다. 구달이 곰베에 온 후 태어난 첫 번째 침팬지였던 플린트는 사진 속에서 구달을 향해 왼팔을 뻗는다.
구달이 BBC 퓨처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듯, 당시는 디지털 사진의 시대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촬영된 모습을 확인하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촬영한 필름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안전하게 보내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까지 두어 달 이상 걸렸고, 인화된 사진이 키고마로 다시 오는 동안 또 기다려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 사진이 이렇게 상징적 사진이 될 줄은 몰랐지만, 당시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신이 인간에게 손을 내미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1964년에 촬영된 이 사진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1965년 12월호에 게재됐다. 반 라윅의 사진 시리즈 “아프리카 침팬지의 새로운 발견”에 들어간 사진 중 하나였다.
당시 잡지 표지는 곰베 침팬지를 연구하는 구달의 또 다른 사진이 장식했다. 그 해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구달의 연구를 소개하는 첫 다큐멘터리 “구달과 야생 침팬지”도 공개했다.
이 사진은 또 반 라윅의 다큐멘터리 “숲의 사람들” 중에서도 거론된다. 구달은 곰베의 침팬지가 “과학계로 하여금 인간만이 유일하게 인격과 정신, 감정을 가진 지각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폐기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1962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를 배웠다고 했다. “(이 사진은) 동물을 이해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열어주었고, 우리 인간이 동물계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 일부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구달은 침팬지가 뻣뻣한 풀잎을 벗긴 뒤 흰개미 언덕 구멍에 풀잎을 꽂아 개미를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같은 도구 사용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 고유의 특징으로 간주돼왔다.
환경 보호 자선 단체인 세계자연기금(WWF)의 과학 책임자인 마크 라이트는 구달이 여러 면에서 “진정한 선구자”였다고 말했다. 또한 이 사진이 과학 연구에서 여성의 관점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고 했다. “구달은 여성도 이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말해준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분야는 남성 중심의 환경이었죠. 하지만 구달 이후,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여성 학자들이 잇따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의 전 회장인 길버트 M 그로스베너도 “분명 그의 가장 큰 유산은 다른 여성 영장류학자들에게 선구자적인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스베너는 제인 구달 연구소가 펴낸 영장류 동물학자 전기에 “20세기 후반기의 약 30년간 다이앤 포시와 비루테 갈디카스, 셰릴 노트, 페니 패터슨, 그리고 많은 여성 학자들이 그의 뒤를 이었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실제로 여성은 이제 세계 곳곳에서 장기 영장류 행동 연구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1964년 이 사진을 찍을 당시는 구달이 곰베에서의 생활에 푹 빠져 연구 대상인 침팬지를 이해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리고 그때 그는 침팬지 행동에 대한 관찰 기록을 천천히 쌓고 있었다. 라이트는 그에게는 이러한 직접 경험이 항상 최우선 순위였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이러한 작업의 많은 부분이 현장에 가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많은 연구가 동물원이나 사파리 공원에서 이루어지는데, 자연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야 하죠. 그리고 몇 주간 잠깐 들렀다 가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머물러야 합니다. 그는 그 점을 강조했습니다.”
별다른 학위는 없었지만, 구달은 동아프리카로 건너가 20년 넘게 곰베에 살면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 침팬지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라이트는 이 사진이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연구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때로는 열린 마음이 최고의 출발점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실험실 가운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공감대를 형성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는 많은 공식적인 교육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상가로 현장에 뛰어들어서 (자신이 본 것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과학 연구의 세계를 모두에게 개방하고자 했던 구달은 많은 사람이 영장류학을 공부할 수 있게 영감을 주었다. 1960년 이래로 곰베 스트림 연구 센터에서는 침팬지의 건강과 행동에 관한 482편 이상의 과학 연구 논문과 대학원 논문이 발표됐고, 수백 명의 과학자가 이곳에서 연구하고 있다.
구달은 방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책,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사와 함께 플린트와 함께 찍은 사진을 통해 개별 동물 보호의 중요성을 알렸다. 구달은 “이전에는 종을 구하는 것이 전부였고 개체는 중요하지 않았다”며 “이제는 과학적 사고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미국 인류학자 마이클 로렌스 윌슨은 2021년 리뷰에서 곰베에서 수행된 많은 연구 결과를 요약하고 구달이 이곳에서 개척한 침팬지 연구 활동의 영향에 대해 고찰했다. 그는 리뷰에서 “곰베는 영장류 현장 연구의 표준이 된 접근 방식인 공동 연구, 식별된 개체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 수집, 동물의 생애 전반에 걸친 추적 관찰의 모범을 보여준다”고 결론 내렸다.
요즘 구달은 이 사진을 보면 향수에 젖는다. “침팬지 한 마리 한 마리를 가족처럼 잘 알고 지냈던 마법 같은 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는 플린트가 작은 아기에서 버릇없는 개구쟁이로 성장하는 모습과, 다른 침팬지들이 실수로 (때로는 고의로!) 플린트를 다치게 하면 항상 누나나 형이 도와주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라이트는 사진 속 구달과 플린트의 친밀함은 당시의 문화를 반영하기도 한다며, 오늘날 과학자들은 관찰 대상인 동물과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구달은 이전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의 연구는 정말 획기적이었죠.”
라이트는 이 사진은 무엇보다 구달이 가진 동물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가 연구한 종에 대한 따뜻함과 애정이 느껴집니다. 곰베에 대한 사랑도 느껴지죠.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입니다.”
구달은 그저 플린트와의 유대가 이 사진을 더욱 매력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어린 새끼가 믿음을 가지고 다가오는 모습, 즉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진정한 유대감이 매력이었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적어도 그게 이 사진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습니다.”
*제인 구달 연구소는 야생 동물과의 물리적 접촉이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침팬지나 다른 야생동물을 다루거나, 상호작용하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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