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개발중인 ‘도나네맙’이 전 세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인지기능 저하를 늦출 수 있다는 데이터가 공개되면서 치매 정복의 전환점을 맞았다는 희망 섞인 목소리가 제기됐다.
도나네맙은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개발 중인 항체의약품으로, 17일(현지시간) 의학저널 ‘미국의사협회저널(JAMA)’에 게재된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후보 물질은 환자의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형성 및 축적을 저해해 초기 단계 환자의 질병 진행을 크게 늦출 수 있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완벽한 치료법은 아니나, 흔한 치매 원인질환인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게 관련 단체들의 설명이다.
영국의 ‘국립보건임상평가연구소(NICE)’ 또한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도나네맙은 여러 치매 유형 중에서도 혈관성 치매가 아닌 알츠하이머병 환자에 효과가 있다.
이번에 공개된 임상 결과에 따르면 도나네맙은 환자의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약 3분의 1가량 늦추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환자들은 스스로 식사를 챙기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는 등의 일상을 더 유지할 수 있었다.
한편 BBC는 이번 글로벌 임상시험에 참가한 영국인 알츠하이머병 환자 수십 명 중 하나인 마이크 콜리(80) 및 그의 가족들과 독점 인터뷰를 진행했다.
런던 남동부 켄트 출신이라는 마이크는 매달 런던의 한 진료소에서 도나네맙을 투여받는다면서 자신은 “정말 운이 좋다”고 말했다.

마이크와 그의 가족은 마이크의 기억력과 의사 결정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채고 얼마 되지 않아 이번 임상 참여를 결정하게 됐다.
마이크의 아들 마크는 “아버지는 정보를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기 정말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이번 임상 참여를 통해) 아버지의 기억력 감소 속도가 정체기에 접어든 것 같다”고 언급했다.
마이크 또한 “(임상 참여 이후) 하루하루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편 도나네맙은 앞서 발표된 신약 후보 물질 ‘레카네맙’과 유사한 항체 기반 치료법을 적용하고 있다.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개발한 신약 물질인 레카네밥 또한 알츠하이머 진행 속도를 낮추는 것으로 입증되면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물론 이렇게 매우 기대가 되는 신약 물질에도 부작용은 있다.
우선 도나네맙의 경우 임상에 참여한 환자의 3분의 1가량이 호소한 뇌부종이 가장 흔한 부작용으로 지목됐다. 대부분 별다른 증상 없이 뇌부종이 가라앉았으나, 참가자 2명(혹은 3명)은 중증 뇌부종으로 인해 사망했다.
또 다른 알츠하이머병 치료 후보 물질인 ‘아두카누맙’은 안전 문제 및 효과 입증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최근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승인받지 못한 바 있다.
치매란 무엇이며, 알려진 치료법은?
이번 도나네맙 임상은 초기 증상 단계의 60~85세 사이 알츠하이머병 환자 1736명을 대상으로 18개월간 진행됐다.
참가자 절반은 매달 도나네맙을 투여받는 실제 투여군에, 나머지 절반은 위약 투여군에 무작위 배정됐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도나네맙은 적어도 일부 환자들에겐 유의미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뇌 스캔 사진 판독 결과 비교적 질병 초기 단계로 기준치보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축적이 더 적은 환자들에게 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투여군 환자들은 시사에 대해 논하거나, 전화를 받거나, 취미 생활을 하는 등의 일상생활을 더 많이 유지할 수 있었다
-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측면에서, 알츠하이머병 진행 속도는 전반적으로 20~30% 느려졌으며, 앞서 연구진이 더욱 유의미한 효과를 볼 것으로 판단했던 환자들의 경우 진행 속도가 30~40% 느려졌다
- 그러나 부작용 또한 상당하기에, 환자들이 그 위험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도나네맙 투여군 환자 중 절반이 뇌에 축적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충분히 제거되면서 1년 후 치료를 중단했다
전문가들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복잡한 알츠하이머병 양상의 일부일 뿐이라면서, 도나네맙 투여가 더 오랜 기간 지속해서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올지는 불확실하다고 경고했다.

도나네맙의 효과가 그리 극적이진 않을 수 있으나, 적어도 이번 임상을 통해 뇌내 단백질 플라크 제거가 알츠하이머병 진행 속도를 바꿀 수 있다는 이론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으며,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을 경우 이 파괴적인 질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영국 치매 연구소’의 자일스 하딩엄 교수는 “오늘 이번 임상 데이터 전체를 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기다려왔습니다. 그렇기에 이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발표되고, 연구 속도에 탄력이 붙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정말 희망적입니다.”
‘영국 알츠하이머병 연구소’의 수잔 콜하스 박사 또한 “오늘 임상 데이터 발표 덕에 (알츠하이머병 연구는) 중대 시점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수십 년간의 연구 덕에 치매 치료 및 치매가 개인과 사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전망이 마침내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편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BBC 라디오 4에 출연해 치매 치료제를 “뇌를 위한 스타틴(혈관 내 콜레스테롤 억제제)”으로 비유하며, 치료제 개발 추가 연구에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뇌 내 단백질을 제거해 결국 치매를 유발하는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환자들이 매일 혹은 매주 복용할 수 있는 알약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치료법 출시를 위해 정부는 필요한 곳에 투자할 준비가 됐는지 묻는 질문에 캐머런 전 총리는 “영국의 인구는 6000만 명에 달하며, 그중 100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이러한 환자를 돌보는 데 많은 예산이 들어가기에, 이들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면 큰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영국의 시스템이 이를 해낼 수 있길 바랍니다.”
한편 레카네맙의 경우 출시된 미국 기준으로 그 약값은 2만7500달러(약 3400만원)에 이른다. 도나네맙의 영국 내 가격이 얼마일지, 당국의 승인을 받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등은 확실하지 않으나, 전문가들은 유사한 신약이 2개나 개발되면서 가격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NICE’ 또한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증 인지장애 및 치매 치료를 위한 도나네맙 사용에 대한 승인 평가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NICE’ 측 대변인은 “영국 내 완전 사용 승인을 받는 것과 최대한 가깝게 NHS 사용 권고안을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마이크는 지난 4월 80세 생일을 맞았다. 마이크는 생일 파티에서 마이크를 들고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열창하며 손님 40명과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마이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현재 얼마나 자신 있는지 보여주는 모습”이라면서 “12개월 전만 해도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 마크 또한 “이토록 다시 활기를 되찾은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알츠하이머 전문 연구소 소속 신경방사선 전문의로, 영국 내 도나네맙 임상 시험을 주도한 에머 맥스위니 책임자는 “무척 유의미한 연구 결과이자, (알츠하이머병 연구에 있어) 가장 큰 돌파구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영국의 ‘알츠하이머 협회’ 또한 “이번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병 정복에 있어 진정한 전환점”이라면서 “과학은 알츠하이머병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당국이 승인할 경우 영국에서만 약 72만 명이 도나네맙의 잠재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알츠하이머 협회’는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가 “이 치료 물질을 환자들에게 보급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케이트 리 ‘알츠하이머 협회’ CEO는 “적절하고 정확한 진단이 핵심”이라면서 “현재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방에서 전문 의료진 조사를 통해 신약을 투여할 수 있다고 진단받은 환자는 (전체 환자의) 2%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러한 신약 물질에 대해선 정기적인 투여 및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NHS는 이를 대규모로 수행할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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