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으로 한국 전쟁의 포성이 잠잠해진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 쪽 군사분계선 부근에선 미군 수만 명이 남아 북한을 경계하고 있다.
이후 줄곧 미군은 동맹국인 한국군과 함께 정기적으로 한반도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북한 측은 자주 분노를 표시하곤 한다.
이렇듯 긴장 관계가 이어지고, 북한과 미국 간 공식적인 외교 관계가 없음에도 소수의 미국인들이 꾸준히 단체 관광 형태로 북한을 방문하곤 한다.
그리고 이는 때로 위험한 결과로 이어졌다.
현재 미 국무부 홈페이지를 통해 “체포 및 장기 억류 등 미국 국적자를 대상으로 한 심각한 위험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으로 여행하지 말라”며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북한에 있는 미국 국민에게 긴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과거 1996년 이후 관광객, 학자, 언론인 등 다양한 미국 국민이 여러 차례 북한에 억류된 바 있다.
그러다 지난 2017년 7월 미 정부는 자국민의 북한 방문을 금지했으며, 해당 여행 금지 조치는 최소 올해 8월까지 연장됐다.
지난 10년간 벌어진 북한의 미국인 억류 사례 몇 가지를 살펴봤다.
오토 웜비어, 2016년
미 버지니아대 학생이었던 오토 웜비어(21)는 지난 2016년 1월 단체 관광객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체포됐다.
평범하지 않은 여행지에 대한 저렴한 관광 패키지를 전문으로 하는 중국 기반의 여행사가 조직한 해당 단체 관광을 통해 웜비어는 새해맞이 기간 5일간 북한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웜비어의 아버지는 이후 미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은 “북한의 문화에 호기심이 많았다”면서 “북한 주민들을 실제로 만나보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2016년 1월 2일 웜비어는 머물던 호텔에서 체제 선전 포스터를 훔치려고 했다는 혐의로 체포됐고, 구금 2달 만에 노동교화형 15년 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런데 웜비어는 선고 직후 불분명한 상황에서 신경학적 부상을 입게 된다.
억류된 지 17개월 만인 2017년 6월, 미국에 돌아온 웜비어는 6일 만에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미 의료진은 웜비어가 “무반응 각성” 즉 깨어 있으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설명했으나, 웜비어의 가족들은 혼수상태라는 표현은 “부당하다”고 언급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격렬하게 움직이고, 울부짖고, 사람 소리 같지 않은 소리를 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웜비어는 머리카락이 모두 깎인 상태로, 시각과 청력을 잃었으며, 팔과 다리는 “완전히 뒤틀려”있었다는 아버지는 아들의 발에도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누군가 펜치로 아들의 아랫니를 뒤틀어 놓은 것 같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버지는 “아들은 김 위원장과 그 정권에 의해 조직적으로 고문당하고 고의로 부상당했다. 이는 결코 사고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후 미 연방법원은 북한 측이 웜비어의 고문 및 사망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북한 측은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으나, 거듭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반박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적국의 이러한 범죄자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웜비어는 “(북한 측의 모든 성의를 다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북한은 자신들이야말로 웜비어 사망과 그 이후 사건에 대한 미국 측의 “중상모략”의 “최대 희생자”라며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브루스 바이런 로렌스, 2018년
2018년 10월, 북한은 미시간주 출신 남성 브루스 바이런 로렌스(60)가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불법 입국하던 중 억류됐다고 밝혔다.
미 당국은 이후 해당 남성의 이름과 인상착의가 같은 어느 남성이 비무장지대(DMZ)에 억류됐다고 밝혔다.
이 남성은 북한 측 조사관들에게 자신의 방문이 한국과 북한 간 지정학적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로렌스는 억류된 지 약 1달 만에 풀려났으며, 이에 대해 미 관료들은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 간 고위급 회담 이후 북한이 대미 관계 개선 노력 차원에서 풀어준 것일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로렌스는 석방 이후에 자신이 겪은 구금 상황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지 않았다.

매튜 토드 밀러, 2014년
미 캘리포니아 출신의 교사였던 매튜 토드 밀러(24)는 2014년 4월 단체 관광 중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돼 “적대적” 간첩 행위로 기소됐다.
이후 북한 측은 밀러가 북한을 답사하고 북한의 상황을 조사하려 했던 자신의 “야망”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2014년 9월 노동교화형 6년 형을 선고받은 밀러는 같은 해 11월 마찬가지로 북한이 억류 중이던 미국인 케네스 배와 함께 전격 석방됐다.
석방 전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밀러는 노동교화소에서의 상황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부분 땅을 파고, 돌을 옮기고, 잡초를 제거하는 등 농사일”이라면서 “그 외 시간엔 그저 격리돼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석방 이후 밀러는 북한 전문매체 ‘NK 뉴스’의 네이트 세이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망명할 의도로 북한에 갔으며, 정치 이념과 상관없이 “평범한 북한 주민들과 평범하게 접촉할” 의도였다고 말했다.
“북한 내 시골에 머무르려 했다”는 밀러는 “그러나 그들(북한)은 내가 떠나길 원했다. 첫날밤 그들은 내게 ‘우리는 당신이 다음 항공편으로 떠나길 바란다’고 말했으나 내가 거절했다. 난 북한을 떠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북한 망명 신청에 대한 “마음을 바꾸게” 돼 미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케네스 배, 2012년
밀러와 함께 석방된 케네스 배는 한국계 미국인 복음주의 선교사로 2012년 11월 북한에 억류된 인물이다.
이미 몇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돌아온 바 있었으나, 이번엔 북한에서 선교 자료가 있는 외장 하드를 들키게 됐다.
북한은 반정부 활동을 위한 기지를 세우려는 시도, 금서 밀수, 반체제 인사 독려 등 배가 북한 당국에 맞서 “적대적인 행위”를 했다며 여려 혐의를 적용했다.
이후 배는 국가전복음모죄로 노동교화형 15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북 관영 매체들은 배가 “솔직하게 자백”한 덕에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배가 북한에 억류돼있던 중 그의 가족들은 배가 열악한 수감 환경과 힘든 노동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배는 억류 기간 중 외국인 노동 수용소에 머물기도 했는데, 당시 유일한 수감자였다고 한다.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 국장이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한 뒤인 2014년 11월, 배는 밀러와 함께 석방돼 미국으로 돌아갔다.
배는 비망록 ‘잊지 않았다’를 통해 수감 첫 4주간은 매일 아침 8시부터 뱀 10시 혹은 11시까지 심문받았으며, 심문관들에게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자백 내용을 인정하길 요구받았다고 설명했다.
어느 심문관은 배에게 “아무도 당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은 국가와 국민에게 잊혔다. 집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15년간 있게 될 거다. 60세는 돼야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유나 리 & 로라 링, 2009년

유나 리와 로라 링은 각각 한국계 미국인, 중국계 미국인으로 둘 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2009년 3월, 이들은 중국의 북한 접경지역 내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중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되게 된다.
함께 있던 미국인 카메라맨과 중국인 가이드 등 다른 제작진 2명은 탈출해 중국당국에 의해 잠시 구금됐다.
링은 이후 취재 중 잠시 국경을 넘어 북한 땅을 밟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기간은 채 1분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리와 링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혐의로 기소돼 같은 해 6월 12일 노동교화형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깜짝 방문하게 됐고, 리와 링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링은 미 ‘NPR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장기 징역형이 내려질 것을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려 했으나, 선고가 내려질 당시엔 절대 준비가 될 수 없었다”면서 “선고를 들으며 이제 내 모든 기회의 창은 닫히고 내 운명은 봉인됐다는 의미인지 궁금했다”고 회상했다.
이들이 풀려났을 당시는 미 대통령이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북한 당국 간 물밑 협상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던 때였으나, 백악관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 “단순히 사적 임무”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링 또한 NPR과의 인터뷰에서 “돈이 오가지도 않았으며, 외교 활동이 일어난 것도 아니였다”면서 “진정으로 개인적인 인도주의적 임무였다”고 주장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