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 것은 5년 전 일이다. 5년 전 W는 대만의 배우 지망생이었고, 가해자로 한 감독을 지목했다. 당시에는 충격과 역풍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이 W가 털어놓았던 사실을 BBC에 확인시켜 줬다.
그리고 올해 6월 23일, W는 친구의 페이스북에 1300단어 분량의 고발문을 올리고 ‘W’라는 서명을 남겼다. 가해자인 감독은 토미 유라고 지목했다.
토미 유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W의 설명이 “가짜”이며 자신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말했다.
W는 BBC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지금까지 기억을 억눌러 왔다”며 대만의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목소리를 낼 용기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아직 W는 익명을 유지하고 있다.
5월 말부터 소셜미디어에서 거의 매일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100명 이상이 유력 인물들의 성희롱 및 성폭행 혐의를 고발했다.
이 상황은 한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시작됐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여성 보좌관에게 성희롱 피해를 신고하도록 독려했다. 이 장면은 이제 많은 상징성을 갖게 됐다. 드라마 방영 후 몇 주 만에 정치인·활동가·지식인의 이름이 거론됐고, 연예계에도 의혹의 물결이 밀려왔다.
타이베이에 본부를 둔 ‘현대여성재단’의 쯔잉 우는 “정치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지만, 연예인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가깝기 때문에 논의가 더 쉽게 시작된다”며 이로 인해 미투 운동이 훨씬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의혹은 페이스북에서 시작됐다. 페이스북은 대만에서 트위터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제기된 의혹을 현지 언론이 널리 보도했다.
6월 19일, 전직 모델 앰버 창은 페이스북을 통해 10여 년 전 유명 코미디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가해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가해자로 추정된 방송인 노노 첸의 매니저는 의혹을 부인했고 노노 첸에게 해당 사건이나 앰버 창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엠버 창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다음 날, ‘샤오홍 선생님’으로 더 유명한 인플루언서 아니사 창은 페이스북에 첸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2010년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발했다. 이후 기자 회견을 열어 질문에 답하기도 했다.
창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가해자가 무서워서” 업계에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창은 첸에게 피해를 당한 20명 이상의 여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현재 성폭행 미수, 성추행, 성희롱 혐의로 첸을 형사 고발하기 위해 검찰과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6월 21일 첸은 페이스북을 통해 활동을 중단하고 “깊이 반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BBC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또 다른 기자회견에서는 팝스타 아론 옌이 전 남자친구의 동의 없이 성행위 동영상을 촬영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촬영 당시 옌은 32세, 전 남자친구는 16세였다. 검찰은 현재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이다.
옌은 BBC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지만 기자회견에 참석해 전 애인에게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견디게 했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고개를 숙였다. 다만, 강압적으로 행동하거나 몰래 촬영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옌이 전 남자친구 야오 러의 기자회견을 방해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야오 러는 옌의 계획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한편, ‘큰 이빨’이라는 의미의 ‘다야’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배우 티나 추는 2012년 홍콩 출장 중 인기 TV 진행자 블래키 첸이 강제로 성관계를 시도했다고 폭로했다. 티나 추는 당시 첸의 연예기획사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첸이 “모든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고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첸은 BBC의 문의에 답변하지 않았지만 “악의적 루머”를 퍼뜨린 혐의로 추를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추는 페이스북에서 “과거에 느꼈던 숨 막히는 압박감이 다시 느껴지지만, 이번에는 용기를 내겠다. 법정에서 보자”고 답했다.
추의 증언이 나온 다음 날, 모델 위안 쿠오는 자신도 첸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쿠오는 첸이 자신을 강간할 뻔했지만 아주 큰 소리로 울었더니 멈췄다고 말했다.
또한, “나는 ‘다야’가 홀로 맞서길 원하지 않는다”고 썼다. 첸은 이번에도 BBC의 문의에 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매니저는 현지 언론에 더 이상 “근거 없는” 비난에 대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나라로 꼽히는 대만에서 미투 운동이 마침내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은 크게 놀랍지 않다. 하지만 이 의혹에는 여성들의 동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익숙한 반발이 따라왔다.
아니사 창은 “끔찍한 기분”이라며 “더 유명해지기 위해” 10년 전 경험을 들먹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여성재단의 올해 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가 괴롭힘이나 폭행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답했으며, 40%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W도 같은 이유에서 익명을 유지 중이다.
W는 5년 전 타이베이에서 열린 영화 상영회에서 토미 유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를 잘 몰랐다고 한다. 토미 유는 본인의 동거인과 함께 탕위안(찹쌀 요리)을 먹자며 W를 집으로 초대했고, W는 초대에 응했다. 마침 가족이 함께 탕위안을 먹는 동짓날이었고, W는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후 토미 유가 W를 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집에서 나오고 싶었지만 토미 유가 W를 붙들었고 그만하라는 애원도 무시했다는 것이다.
“제가 그 집에 가서 탕위안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강간을 당해도 되는 건가요?”
W는 몸을 씻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껴 병원에 가거나 경찰에 신고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밖에 있기가 무서웠다고 한다. W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려 애쓰며 멍이 든 허벅지 사진을 토미 유에게 보냈다. 그랬더니 “저런, 어쩌다 그렇게 됐지?”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토미 유를 성폭력 혐의로 고발한 것은 W가 처음이 아니다.
W의 고발이 올라오기 3일 전, 연극배우 시야 유는 페이스북에서 토미 유 감독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던 중 감독이 성추행을 했다고 밝혔다.
시야 유는 토미 유가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시물을 보기 전까지는 이 사실을 폭로할 계획이 없었다고 말했다. 토미 유는 대만에서 진행 중인 미투 운동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더 많은 증오”만 초래할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토미 유는 자신이 “사랑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완전히 결여”됐고 힘든 어린 시절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며 사과했다.
시야 유는 폭로 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다른 여성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W의 게시물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댓글 작성자들은 W에게 공감을 표했고, 어떤 작성자는 토미 유에게 성희롱을 당한 다른 피해자를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토미 유는 W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지만, 다른 여성들의 주장에 대한 BBC의 질문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대만의 활동가들은 현 상황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희망정원재단’의 후이정 치는 지금은 여전히 성희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으며, 성폭행 관련 “대형 폭로”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후이정 치는 국가의 법률·상담 지원이 확대되어야만 대형 폭로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우선 정부가 현재 6개월인 성희롱 사건의 공소시효를 연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W는 여전히 신분 노출이 두렵다고 말한다. 대중의 반발과 경력에 미칠 영향이 두렵다는 것이다. 이제는 덜 외롭지만, 같은 고통을 겪은 여성들이 너무 많아 가슴이 아프다고도 했다.
W는 “오래된 상처를 다시 파헤치는 것이 힘들었지만, 치유될 기회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저는 더 강해져야 합니다. 다른 여성들과 함께 이 길을 계속 걸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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