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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선거, ‘선거보다 대관식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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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 센 캄보디아 현 총리의 아들 훈 마넷

Reuters
훈 센 캄보디아 총리의 아들 훈 마넷이 몇 주 안에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환호를 보내는 오토바이 행렬이 시동을 걸었다. 프놈펜 시내에서 승리를 향한 마지막 유세를 준비하면서 캄보디아 집권당을 응원하는 의미로 깃발을 흔들었다.

사람들은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섰다. 뺨에는 정당 스티커를 붙였다. 지급받은 하늘색 모자와 셔츠가 점점 젖어갔다.

트럭 뒤에 앉은 훈 센 총리의 장남 훈 마넷(45)이 군중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오직 캄보디아인민당(CPP)만이 캄보디아를 이끌 수 있다고 외쳤다.

실제로 그의 부친은 오직 CPP만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올해 70세의 훈 센 총리는 38년 동안 트레이드마크인 독단적 스타일로 캄보디아를 통치해 왔다. 처음에는 베트남이 수립한 공산주의 정권에서, 그다음에는 유엔이 수립한 다당제 환경에서 위세를 떨쳤고, 최근에는 점점 더 포용력을 잃어가는 독재자로서 군림해 왔다.

촛불당(CP)이 훈 센의 유일한 대항마로 보였지만, 지난 5월 총선 참여 자격이 박탈됐다. 나머지 17개 정당은 총선 참여가 가능했지만 규모가 너무 작거나 인지도가 낮아 위협이 되지 못했다.

투표 종료 몇 시간 후 CPP는 80%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예상대로 압승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상당수의 투표용지가 훼손됐다. 이는 유권자들이 야당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면서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투표 후 몇 주 안에 훈 마넷이 부친의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총선은 오랫동안 준비된 권력 세습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선거라기보다 대관식처럼 느껴졌다.

2017년에는 캄보디아구국당(CNRP)이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된 바 있다. CNRP 부대표를 지내고 현재 망명 중인 무 소추아는 “이번 선거는 가짜 선거라는 이름도 아깝다”고 말한다.

“차라리 ‘후계자 선정’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훈 센 총리가 아들을 차기 캄보디아 총리로 선정해 훈 가문의 왕조를 이어가도록 만드는 거죠.”

훈 센 총리

Reuters
38년 동안 집권한 훈 센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실질적인 도전에 직면한 적이 없다

그러나 CPP 내부에서는 투표 전부터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투표지 훼손이나 보이콧 조장을 처벌하기 위해 새로운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켰고 촛불당에서 여럿이 체포됐다.

캄보디아 싱크탱크 ‘퓨처포럼’의 설립자 우 비락에게 “CPP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를 위해 그토록 매진한 이유”를 물었다.

“CPP가 선거에서 이길 것은 알고 있었죠.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정당성을 얻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야당을 계속 약화시키는 동시에 국민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 가두시위와 같은 차질과 혼란이 반복되지 않을 테니까요.”

훈 센 총리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기간 권좌에 앉은 정치가 중 한 명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 정적을 압도하면서 교활하고 영리한 행보를 보였다. 특히, 중국과 미국·유럽의 경쟁 관계를 교묘하게 이용해 왔다. 오늘날 해외에 많은 투자를 하는 중국과, 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되찾으려는 미국·유럽의 라이벌 구도를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과거 선거에서 패배할 뻔한 순간이 있었다. 집권당 내에는 여전히 경쟁 파벌이 존재하고, 캄보디아의 갑작스러운 경제 침체로 인해 여론이 악화될 경우 취약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한 세대에 한 번뿐인 권력 이양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공고히 하려 노력 중이다.

수도 프놈펜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콘크리트와 대리석으로 만든 33m 높이의 기념탑이 있다. 훈 센 총리는 이를 ‘윈윈’(Win-Win) 기념탑이라고 부른다.

전승기념관에 설치된 조각

BBC
2018년 개장한 전승기념관에는 1200만달러(약 154억원)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기념탑을 받치는 거대한 바닥은 석조 부조로 둘러싸여 있는데, 캄보디아의 가장 위대한 역사적 기념물인 앙코르와트를 연상시킨다.

부조에는 1977년 크메르 루주가 통치하던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으로 도망친 훈 센의 모습, 1979년 베트남 침공군과 함께 승리하여 돌아온 모습, 1998년 크메르 루주 마지막 지도자와의 협상을 통해 오랜 내전을 끝내고 캄보디아 국민을 위해 승리(Win-Win)를 가져온 훈 센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평화와 번영은 오랫동안 훈 센 총리가 내세운 정당성의 핵심이었다. 취약한 기반에서 출발한 캄보디아는 1998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국으로 꼽히게 됐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성장 모델은 소수의 부유층에 부를 집중시켰다. 저소득 국가의 도로에 초호화 자동차가 즐비한 모습은 강렬한 부조화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캄보디아의 천연자원이 무분별하게 착취됐고,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센 총리의 캄보디아에서 ‘승리’가 무색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프락 소핍은 엔진 수리점 뒤편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프놈펜 외곽 저지대의 큰 도로와 얕은 호수 사이에 위치한다. 소핍 가족은 25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낚시를 하고 호숫가에서 채소를 재배했다.

하지만 이제 호수 대부분은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남긴 잔해로 가득하다. 소핍 가족에게는 이주 명령이 내려졌다.

소핍은 지역 기관에서 받은 서류를 내밀며 자신이 그곳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보여줬다. 또 다른 서류는 국유지 불법 점유에 대한 법원 소환장이었다. 소핍은 무력감과 분노를 느꼈다. 그런 사람은 소핍만이 아니다.

집 앞에 서 있는 프락 소핍

BBC
프락 소핍은 25년 동안 살아온 집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토지 분쟁은 캄보디아에서 가장 불만이 많은 문제로 꼽힌다. 크메르 루주 혁명으로 모든 재산 증서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내전이 끝난 후 수백만 헥타르의 토지가 상업 개발에 할당됐다. 이 과정에서 훈 센과 동맹을 맺은 많은 정치인과 사업가들이 유리한 계약으로 큰 부를 얻었다.

법원이 이들의 강력한 이해관계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제투명성기구’ 평가에 따르면 반부패 순위에서 캄보디아가 180개국 가운데 150위를 차지했는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이보다 순위가 낮은 국가는 미얀마와 북한뿐이다.

소핍은 “훈센 총리가 항상 자신의 ‘윈윈 정책’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기는 건 훈 센 총리뿐이라고 생각해요. 우린 지금 쫓겨나고 있습니다. 평화 같은 건 없어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진짜 캄보디아 사람들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토지 수용과 퇴거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괴롭힘, 구타, 투옥을 당했다. 노동조합원과 야당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소펩에게 이번 선거에서 어디에 투표할 것인지 묻자 “누구를 뽑아야 하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누가 날 지켜줄 수 있을까요?”

유권자 절반은 35세 미만이다. CPP는 매끄러운 소셜미디어 전략을 펼치며 훈 마넷과 정당의 다른 젊은 지도자들에게 선거 운동을 맡겨 청년 유권자를 끌어오려 노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캄보디아 사람들은 전쟁이나 크메르 루주에 대한 기억이 없다. 법대 졸업생이자 환경 운동가인 리 찬드라부스(23)는 CPP가 선거 활동에서 주장하는 오래된 논점이 이제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훈 마넷의 가장 큰 과제는, 우리 세대가 크메르 루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은 이전 세대와 매우 다르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집권당이 그 비극을 상기시켰던 걸 기억합니다. 그들이 평화를 가져왔으니 우리가 그들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죠. 하지만 그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여당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젊은 세대는 여당을 비웃어요. 30년 동안 같은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훈 마넷은 거칠고 때로는 폭력적인 부친의 통치 방식을 보다 부드럽고 섬세하게 바꿀 수 있을까? 그는 서구식 교육, 오랜 군대 지도부 생활, 오랜 후계자 교육을 경험했지만 아직 고위 공직에 오른 적이 없다.

훈센 총리와 동시대를 살아간 테아 반 국방장관과 사르 켕 내무장관 등의 다른 “왕자격” 아들들도 내각에서 부친의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같은 가문에서 경험이 적은 이들에게 권력이 이양되는 ‘왕조 교체’가 이어지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향후 몇 년은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시기가 될 수 있다.

CP-2022-0043@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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