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현지시간)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으로 넘어간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23)의 생사에 대해선 여전히 알려진 바 없다. 현재 미 당국은 킹의 송환을 위한 협상에 있어 중대한 단계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은 북한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의 송환을 이뤄내기 위해선 공식 경로가 아닌 백채널(비공식 경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재 북한에서 억류돼 조사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킹 이등병은 1주일 전 북한과 한국을 가르는 비무장지대(DMZ)를 가로질러 북한으로 향하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이후 미군의 핵추진잠수함이 한국 해군 기지에 입항하고, 이에 맞서 지난 24일 오후 북한이 탄도미사일 2발을 바다로 발사하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리처드슨 국제 외교 센터’의 미키 버그만 전무이사는 “(미 당국은)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파악하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의 20년간 적대국에서의 미국인 송환 협상에 참여해 온 버그만 이사는 풀려날 확률은 이들이 억류된 직후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즉 스파이 행위와 같은 범죄 혐의로 기소되기 전 이들이 아직 억류한 당국으로부터 심문받을 단계일 때다.
또한 버그만 이사는 사건이 공식화되기 전 단계에서 협상가들이 인류애적인 부분에 가장 잘 호소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버그만 이사는 “협상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우리가 힘을 과시하고, 테이블을 뒤집어엎고, 사악한 북한에 우리 군인을 돌려달라고 한다면 저들(북한)은 오히려 더 꾹 참고 기다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과거 미국은 자국민 송환을 위해 어떤 협상 방법을 썼을지 살펴봤다.
‘뉴욕 채널’
미국이 북한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지 않았기에 자국민 억류 사건이 발생하면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이 중개자 역할을 도맡아 미 당국의 메시지를 북한 당국에 전하곤 했다.
하지만 비공식 경로도 있다. 바로 ‘뉴욕 채널’이다. 미 뉴욕의 유엔(UN) 주재 북한대표부가 위기 상황 시 미국과 북한 관료들의 대화 통로가 되는 것이다.

한편 로버트 킹 전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지난 수년간 미국인이 북한에 억류됐을 당시 가장 먼저 연락이 가던 인물 중 하나였다.
킹 전 특사는 대학생 오토 웜비어와 선교사 케네스 배 등 여러 북한 내 미국인 억류자 석방 협상을 도왔다.
웜비어는 2016년 1월 북한을 방문했다 17개월간 억류된 이후 광범위한 뇌 손상을 입은 채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가족들과 재회한 지 며칠 만에 결국 사망했다.
웜비어의 죽음은 당시 국제 사회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유가족은 아들이 북한에서 학대 및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짧게 외교 생활을 경험한 킹 전 특사는 현재 양국 간 정치적 긴장이 개재된 상황에서 억류자들이 지정학적 다툼의 인질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즉 “(북한 당국은) 이번 상황을 ‘어떻게 미국을 나쁘게 보이게 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킹 전 특사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기쁜 결과는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변부 외교’
거의 20년간 버그만 이사는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주 주지사와 함께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에서 억류된 자국민 석방을 위해 노력해온 인물이다.
‘리처드슨 센터’는 이번 트래비스 킹 사건에 참여하고 있진 않으나, 버그만 이사는 경험상 북한과의 협상에선 정해진 각본이나 정공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대신 ‘주변부 외교’라고 부르는 방식을 통한 접근이 최선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들과 인도주의 단체들은 지난 수십 년간 북한 주민들을 도왔다. 이에 공식적인 대화 채널이 중단될 경우 이러한 비정부적이고 비공식적인 채널이 억류자의 가족을 대신해 협상에 참여하곤 한다.
버그만 이사는 이렇듯 비정부기구를 끼고 협상할 경우 미 정부와 분리되는 게 더 좋다고 설명했다. 정치 논리 대신 구금자의 안전과 무사 귀환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버그만 이사는 “정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면서 “이 문제를 정치 논리에서 따로 떨어뜨려 놓으면 일부라도 해결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버그만 이사는 전 세계는 정치범이 구출돼 본국으로 송환될 때 “개입”의 순간에만 종종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순간이 마련되기 위해선 수년간 상대국과 의미 있는 관계 쌓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계속 관계를 쌓아온 상태여야 합니다. 그래야 위기가 닥쳤을 때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되죠.”
복잡한 요인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이 2가지 협상 경로를 이용하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우선 북한 당국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국경을 전면 폐쇄했는데, 버그만 이사는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 또한 현재 코로나19 이전 상태로 완전히 복귀해 운영 중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언급했다.
게다가 과거 트럼프 행정부는 웜비어 사건 당시 짧은 외교적 접촉 시도 끝에 북한을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하며, 미국 여권이나 비자를 갖고 북한에 가면 그 여권이나 비자는 무효화된다고 밝혔는데, 이에 따라 억류자 송환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이러한 여행 금지 조치는 현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버그만 이사는 이에 따라 관계 쌓기를 위한 인도적 경로 또한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며 우려했다.
버그만 이사는 “북한은 전 세계에서 미국이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한 유일한 국가”라면서 “북한은 이를 모욕으로 간주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웜비어 석방 협상에도 참여한 바 있는 버그만 이사는 웜비어의 죽음 이후 국제 사회로부터 역으로 타격을 입게 되면서 정치적 억류자에 대한 북한 당국의 시각이 변했다면서, 이에 따라 북한이 이번 협상에선 전보다 더 타협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웜비어 협상 이후 비극적 결과를 맞이하게 된 북한이 정치범 억류 게임에 참여하지 않기로 선택했을 것으로 본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버그만 이사는 그렇다고 해서 킹 이등병이 신속히 석방된다는 의미는 아니라며, 이에 대해선 지켜봐야 한다고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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